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 16. 인종차별
20살 때 처음 체 게바라의 자서전을 읽고 꿈꿨던 남미에서 겪었던 인종차별들은, 나에게 가혹했다. 오히려 많은 기대와 꿈을 안고 그곳으로 떠났기 때문이었으리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임을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가 겪었던 일련의 일들은 어딜 가나 존재하는, 심지어 한국에서도 내 일상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이기 마찬가지였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감정적으로 기분이 나빴던 처음과 다르게, 차분히 내 모습들을 돌이켜보았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지만, 이런 차별을 살면서 받아본 적이 그리 없는 사람들에게는 문화 충격이자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왜 그런 걸까?
아시아인은 만만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일단 서구 사람들보다 한눈에 봐도 체구도 작다. 걔네들이 말하는 눈도 그렇고. 그리고 웬만한 아메리카 국가에서는 미국과 같이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거나, 남미처럼 불법이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총기를 자유롭게 소지하고 있다. 워낙 권총 강도도 많고, 위험한 지역에는 방어용으로 많이 두기도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시비가 벌어질 경우 대응할 수 없는 무기는? 없다. 그냥 무시하며 그 자리를 피한다. 또한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아시아인 asiatico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중국의 chino로 많이들 착각한다. 예부터 인구가 많고 세계 어디서 흩어져 있어도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중국인들(차이나타운은 정말 어딜 가도 있더라)은 당시 정착 초기 언어적, 민족적, 경제적, 정치적 모든 면에서 차별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기억은 고스란히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일 테고.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차별이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인종 차별(人種 差別) 또는 인종주의(人種主義, 영어: racism)는 그들이 인식하고 있거나 그렇다고 믿고 있는 ‘인종’을 근거로 다른 이들을 차별하는 사상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이는 사람이 여러 인종으로 나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특정
인종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배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종 차별주의는 다른 인종인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거나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하는 생각이 의식이나 무의식 가운데 나타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종 분류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인종들이 여러 계층으로 나뉠 수 있다고 믿는다.
역사적으로도 살펴보면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스페인 침략자로부터 숱한 인종 차별을 겪으며 가진 것마저 다 빼앗기고 만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날까지도 그 시절의 차별은 고스란히 전해져, 비교적 유럽 서구인들의 피가 많이 섞인 크리요오의 나라 칠레나 아르헨티나는, 실제로 경제적으로도 아래에 있고 원주민 피가 많이 섞인 볼리비아나 페루를 극도로 싫어한다(오죽하면 심한 욕 중 하나가 페루아노 일까) 하지만 남미에서 상류층이었던 크리 요오들 역시 유럽 본국 사람들로부터 정치적 차별을 받다가, 마침내 반기를 들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남미의 독립을 이끈 볼리바르 역시 크리요오 출신이다) 결국 차별은 내가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려는 인간의 나쁜 본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모습은? 나 역시도 일상생활에서 차별인지도 모른 채 차별을 하고 있진 않았을까. 아프리카인은 다 같은 아프리카인, 동남아인들은 나보다 더 많은 걸 누리지 못 했으니 불쌍한 사람들.. 의도가 어떻든 무지했고 그 무지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를 받고 차별을 받는다면, 인종주의나 배타주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칠레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화내면 나만 손해다." 였어요. 아무리 우리가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다, 눈 찢는 제스처는 인격모독이고 인종차별이니 하지 마라 라고 말해줘도 모르는 애들은 몰라요. 정말 무지한 거고 관심이 없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동남아 사람들 무시하고,
아직도 흑인이면 국적이 아닌 그냥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생각하듯이.
그러니 칠레 오시게 돼서 그런 일들을 겪으시면, 넘기시는 게 속 편해요. 반대로 나를 돌아보고 난 차별한 적이 없는지 돌이켜 본다면 난 성장하게 되는 거죠. 그래도 너무 화가 나거나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될 땐 한국을 좋아하는 칠 레인 들도 많아요. 그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그들은 절대 안 그러죠. 오히려 한국에 너무 가보고 싶다, 한국인이 좋다, kpop과 영화는 정말 예술이다, 너넨 우리나라에 비해 선진국이다 라는 말들을 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나쁜 감정은 털어내세요. 내 친구들이 중요하지, 길거리에서 한 번 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니까요.
인종차별을 한 두 번 겪고 나다 보면 나 자신이 초라해질 때가 있다. 굳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런 푸대접과 차별을 받으며 약자로 지내야 하나, 그러다 보면 내 부족한 점들까지 보이고 생각하게 된다. 이때가 가장 정신 건강에 안 좋은 듯하다.
결국 차별은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이(심지어 나 자신도 모르고 차별을) 자신의 우열을 드러내기 위해 상대방을 낮추는 행위로써, 어느 순간에서든 일어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괜히 그런 대접을 받았다고 당사자가 아닌 내 친구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거나, 칠레에 대한 욕을 한다거나 하는 건 오히려 차별을 부추기는 꼴이 된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황에서 웃으며, “no soy chino, soy coreano.”라고 말해주자.
한 번은 쿠바에서 어린 꼬마 무리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저 멀리서 놀이하듯 치노~#$%#(뒷 말은 못 알아들어 다시 물어봤지만, 옆에 있던 학부모가 그냥 아이들 놀면서 하는 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를 외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모두들 도망을 갔다. 순간 마치 내가 괴물이 된 마냥 기분이 나빴지만 한 아이한테 다가가 웃는 얼굴로 친구들 좀 불러달라고 했고, 학무형까지 모인 자리에서 웃는 얼굴로 “너네가 아직 못 가봐서 그렇겠지만, 아시아는 중국만 있는 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만큼 아주 커. 난 거기서 온 한국에서 온 민조고. 반갑다 애들아.”라고 했더니 몰랐다며 머리만 긁적였다. 그때부터 치노 치노 거리는 어른들에게도 활짝 웃으면서 "나 치노 아니야. 꼬레아노야^^"와 안녕을 열심히 알려주고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나. 아무리 속에서 열불이 나도 ‘그래, 너네는 무식하니까.’라고 속으로 외치며 친절히 알려주면 대부분은 몰랐다며 멋쩍은 엄지를 치켜들며 꼬레아 꼬레아를 외친다. 무식한 사람들에게 알려주자. 마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 하지만 너의 무식으로 인해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면 죄가 될 수 도 있는 거야. 나 기분 나빠지려고 했으니까 앞으로는 아시아인을 중국인이라고 섣불리 부르지 마. "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듯한 웃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