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 21. 정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워킹홀리데이를 이제 막 시작된 칠레로 오다 보니, 워홀 정보는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 이 곳의 국가, 생활 정보가 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체결 후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처음보다는 더 많은 후기와 정보들로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인근 캐나다 워홀이나 꽤나 유서 깊은 유럽 워홀 정보에는 훨씬 못 미친다.
고로 산티아고에서 생활하면서 몇 명 되지 않는 칠레 워홀러들은 카톡 단체방을 통해 많은 정보 교류를 하는데(놀기도 많이) 역시나 절대적으로 사람이 없다 보니 훨씬 더 빨리 돈독해지는 일종의 전우애는 생기는 듯하다.
그러니 혹 워홀을 떠나게 된다면 반드시 대사관이나 한인회에서 운영하는 단톡방 하나 정도는 발을 걸쳐 놓는 걸 추천한다. 추후에 게재하겠지만 초기 정착 정보부터 여행, 취업 정보까지 알짜배기들이 다 올라온다. 나 역시 칠레 워홀 단톡방에 공유해주신 한인 회분의 취업 정보로 취뽀했으니, 오늘 포스팅은 그 서막을 알렸던 중요한 주 칠레 한국 대사관 주체 한국 워킹홀리데이 세미나 참석기이다.
칠레에 도착해서 보니 약 8명 정도의 칠레 워홀러 선구자들이 깃발을 꽂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희한하게 외국만 나가면 자연스레 한국 사람들을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나는, 생각을 바꾸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이 한국인들과의 교류를 약속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큰 도움을 받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윗 선배와 바로 아랫 후배들이 아닌가.
그중에서도 대모라 불렸던 칠레 워홀러 1호 지렁이님이나 86 막차 형들, sunny님 등등 이미 산티아고에서 생존하고 계신 유물, 아니 선배님들한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워홀 단체방은 아직까지 생존하여 워홀러들의 동아줄 같은 정보통이 되어주고, 간간이 무료한 워홀 생활의 단비 같은 아사도 파티나 홈파티를 즐겼더랬다.
볕 좋은 어느 날 대모님을 통해 칠레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주관하는 "한국 워킹홀리데이 세미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단박에 가야겠다 마음먹고 모임 장소인 센트랄 대학으로 향했다(서울 주재 칠레 대사관에서 비자 수령 당시에, 유쾌하셨던 사무관님이 '산티아고 가시면 꼭 한 번 한국 대사관 들러서 눈도장 찍으세요~나쁠 거 하나 없답니다. '라는 달콤한 말에 빠져 산티아고 온 다음 날 곧바로 대사관을 찾아갔더랬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놀랐고, 대학 내 회의 장소에서 열렸기 때문에 본교 대학생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 손을 잡고 온 딸, 흰머리가 지긋하신 아저씨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한국을 가고 말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고 다만 문제는 높은 물가와 현실의 벽뿐처럼 보였다.
윗 분들의 환영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미리 섭외된 한국 워홀러, 칠레 워홀러 2명씩 경험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뒤이어 질문 시간이 이어졌는데(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우리랑 고민하는 게 비슷했다. 주로 한국 생활과 외국인들의 취업현황, 물가, 비자 등에 대한 물음들이 많았고 특히나 한국에서 칠레로 워킹홀리데이로 온 우리들과 짠한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했다.
QnA 시간만 1시간이 넘게 진행되었고, '뭐 도와드릴 게 없나요?' 라며 적극적으로 뽈뽈 거렸더니, '그럼 질문 시간에 마이크 좀 전달해주세요~'라는 특명을 받고 뛰어다녔다(그랬더니 대사관 직원이 곧 있을 재외국민 선거 때 와서 도와달라 하셨다,앗싸 목표달성) 아직 정식으로 워홀 협정이 체결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더 많은 교류와 상호 도움 속에 많은 청년들이 뜻깊은 경험과 추억이 남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아니, 한국으로 워홀 가서 뭐하려고?
진심 어린 물음에 모두들 신나게 웃었다.
그러는 너희들은 칠레에서 뭐 먹고 사니?
아.. 얘네도 우리 보면서 그랬겠네..
그래, 우리 파이팅하자. 적어도 우린 하고 싶은 게 생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