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9. 아사도
화창한 일요일, 아침저녁 기온이 한자리로 떨어질 정도로 으슬으슬 춥지만, 한낮의 기온은 34도까지 치솟았다. 산티아고에서 맞는 2번째 주말은 학원 숙제와 보충 공부로 조용히 맞이하고 싶었고, 덕분에 금요일 저녁부터 신나게 흥얼대는 바깥 음악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다음 주 평일 내내 또 학원을 가야 했기에, 날 좋은 일요일만큼은 나가 놀기 위해 지난번 약속해둔
바비큐 파티(asado)에 참석했다.
남미 문화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아사도는 본래 "아르헨티나의 원주민들이 먹던 요리에서 유래된 전통음식"이지만, 현재는 남미 각국의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 바비큐 파티처럼 즐기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원주민인 가우초(gaucho)들이 먹던 요리에서 유래하여 전통음식이 되었다. 숯불이나 그릴의 한 가지인 파릴라(Parilla)에 쇠고기 중에서도 특히 갈비뼈 부위를 통째로 굽는다. 다른 양념은 하지 않고 굵은소금만 뿌려서 간을 맞춘다. 오레가노·파슬리·칠리 등으로 만든 치미추리(chimichurri) 소스와 함께 먹는다. - 네이버 백과사전 중-
요즘 트래블러 라는 티비 프로에서 아르헨티나의 아사도 맛집이 나왔는데, 실제로 먹어본 남미의 고기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아르헨티나 소고기와 우루과이 소고기가 가장 육질이 부드럽고 맛있었다.
하지만 한우만큼 부드럽지 않고 조금 질긴 편이며 소금 간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항상 스테이크 집을 가면
poco sal!(소금 조금만 넣어주세요!)을 잊지 않고 외쳐야 했다.
(하지만 3스푼의 소금이라면 0.5스푼 정도 덜 넣는 느낌?)
그리고 칠레 산티아고에 우루과이 표 아사도 맛집이 유명한 편이다. 갑자기 또 왜 우루과이냐고?
사실 원조라는 게 이 곳 저곳에 있지 않은가? 원조 싸움은 지구 반대편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어딜 가더라도 아사도의 시초는 자기들이라고 하니.
여하튼 아사도 문화는 남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통된 음식 문화 임은 틀림없다.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라도 일요일만 되면 다 같이 모여 아사도를 먹으며 싸우는 광경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러니 남미에 오면 무조건, 아사도 맛집부터 찾으시라, 그럼 남미에 제대로 도착한 것이다.
아사도를 할 수 있는 공원 앞 JUMBO에서 고기와 마실거리를 신중히 사서, 출발! 줌보 마트는 칠레에서 가장 큰 마트 체인 중 하나인데, 어딜 가든 가장 많이 보이는 브랜드이며 상품군도 비슷하다.
하지만 정육점의 고기는 부위별 맛과 식감도 다르니 반드시 사전에 알아보고 가야 한다.
우리는 주로 먹는 LOMO(안심), 등갈비(CHULETA)를 샀다.
산티아고 도심에서 노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Parque padre hurtado"으로 향했다.
드넓은 공원에는 캠핑장과 아사도를 해 먹을 수 있는 바비큐 공간, 공용 식탁, 드넓은 잔디밭, 심지어 동물들도 볼 수 있다. 입장료 500페소, 그리고 한 테이블 당 인원수 상관없이 5000페소를 지불하면 얼마든지 먹거리를 사 와서 아사도를 해 먹을 수 있게 해놓고 있다.
날 좋은 주말이라 그런지 이미 많은 가족단위의 칠레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푸른 잔디 위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구경거리 삼아 좋은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푸른 잔디와 뒤쪽으로 보이는 멋진 산맥을 구경하며 우리가 머물 아사도 장소로 이동하니, 오두막 같이 생긴 테이블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시작하고 있었다. 주로 가족 단위였고 아이들 생일 파티를 해주는 곳도 보였는데, 진짜 칠레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칠레노 알렉과 파라과이 해외파 에릭이 능숙하게 숯에 불을 떼 아사도 준비를 했다. 머리털 나고 난생
처음 아사도를 본 나머지 워홀러들은 그저 입으로는 감탄하는 척하며, 속으로 얼른 고기가 구워지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들이 아사도 장인이라 우기며 굳이 가져온 토치를 쓰지 않고 입으로 후후 불며
불을 피우겠다는 게 아닌가..!
뭔가 통한의 한일전의 그것과, 혹은 남자들 만의 자존심 대결 같은 아사도 부심이랄까.
하지만 기어코 이 남미 마초들은 입과 손으로 불을 피워냈다, 20여 분 동안의 사투 끝에.
오후 2시쯤 도착하여 고기를 모두 먹고, 맥주와 후식으로 달달한 망고까지 다 먹은 뒤
오후 7시쯤 정리하고 공원을 빠져나왔다. 공원 안에 호수도 있다던데 워낙 넓어
구경할 엄두 조차 내지 못 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나왔는데, 7시에 공식적 클로징 시간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 나 남미에 있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칠레에 대해 조금씩 더 많은 모습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한국에서는 꿈만 꿨던 것들을 현실로 맞이하니, 뭐 별 거 없네 라는 생각과 함께 일상적이면서 특별한 추억들이 될 것 같아 설레기도. 여하튼 칠레에서 맞은 생애 첫 아사도는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첫 기억이 이리도 좋으니 앞으로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