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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메론 프라이 Apr 03. 2023

덕훈은 어떻게 (여자)아이들의 팬이 되었나?

이것도 팬픽이라면?팬픽인가? : 덕훈의 그저그런 (여자)아이들 입덕기 1




덕훈은 어떻게
(여자)아이들과 첫 조우를 하게 되었나?





2020년 12월27일 자정을 1분 남긴 시간에 덕훈은 변기위에 앉아 있었다.


잔뜩 졸린 눈 밑으로 무심하게 널부러져 있는 그의 입술 사이에는 핑크색 칫솔이 물려져 있었다.


덕훈은 자신의 두툼한 왼손으로 그 핑크색 칫솔을 부여잡고는 성의 없는 움직임으로 칫솔질을 해댔다.

   

어영부영한 칫솔질이 끝나자, 덕훈은 변기에서 일어나 물을 내렸다. 변기물이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내려가는 사이 덕훈은 세면대로 자리를 옮겨 비누를 움켜줬다.


브라운색 다이알 비누을 품고 있는 그의 두 손은 마치 햄버거 패티를 감싸고 있는 두툼한 빅맥 버거빵 같았다.


아무튼 성의 없는 비누칠로 손을 씻은 덕훈은 역시나 성의 없는 표정으로 성의 없게 가글을  한 후, 수건걸이에 걸린 눅눅한 수건에 손과 입을 닦았다.


화장실을 나와 방을 향해 뒤퉁거리며 걸어가는 덕훈의 오른손에는 무심하게도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그 때 “띠리링”하는 알람이 울려왔다. 덕훈은 스마트폰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들어 올렸다.


안경을 벗고 있어 희미하게 보이는 스마트폰 바탕화면이 눈 근처 까지 올라오자, 액정의 내용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점진적인 뚜렷함 뒤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탕화면 좌측 상단에 자리 잡은 눈곱만한 인스타 아이콘 이었다.


덕훈은 늘 그랬던 것처럼 손가락으로 화면을 꾹꾹 눌러댔다. 곧이어 알람을 보내준 인스타의 페이지가 하얗게 얼굴을 내비쳤다.


그건 (여자)아이들의 인스타계정 홈이었다.


새롭게 업데이트된 썸네일에는 메인댄서 수진이 나비로 머리를 장식한 채 고개를 6시5분 정도로 틀어 덕훈을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래 "Visual Film"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덕훈은 그녀를 응시하며 집게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 위에 놓여진 삼각형 모양의 재생 버튼을 지그시 눌러 동영상을 재생했다.



https://www.instagram.com/p/CJTjCTvBtA3/?igshid=8yiw672bfug5
2020년 12월28일 0시에 (여자)아이들 공식 인스타 계정에 공개된 컴백 Visual Film 이미지




서늘하게 지나가는 사운드를 따라서 민니의 얼굴이 보였다. 더욱더 재빠르게 전개되는 비트들 속으로 우기와 소연, 수진과 미연, 그리고 슈화의 이목구비들이 붉고 하얀 이미지들과 함께 스쳐지나갔다.


그리곤 나지막하고 명확한 민니의 음성이 들렸다.


얼핏 듣기에는 "we'll vanish" 같이 들렸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52초쯤에서 아이들의 로고가 뜨고 영상은 다시 처음 수진의 얼굴로 돌아와 반복재생을 시작했다.

    

덕훈은 홈버튼을 누른 후 중얼거렸다.


"아이들이 컴백하나보네"


그리고는 씨~익 하고 입꼬리를 올려 보았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덕훈은 스마트폰을 열어 디씨인사이드 (여자)아이들 갤러리를 눈팅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벌써 그녀들의 컴백을 반기는 갤러들의 축하글들이 꼬리잡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갤러들의 분위기에 덩달아 취한 덕훈은 여전히 입꼬리가 올라와 있었다.


그 와중에 덕훈의 손가락은 재빠르게 게시판의 “개념글” 메뉴를 클릭했다.


그곳에는 이미 음원 관련 총공총대가 올려놓은 모금 공지와 아이디 공유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컴백 후 음원 성적과 음악방송 1위를 위한 갤러들의 덕질 매뉴얼이 줄줄이 진을 치고 있었다.


덕훈은 자신의 시상하부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동공은 작은 눈을 비집고 나와 크게 확장되었고, 시신경은 그 복잡한 컴백 준비 과정을 막힘없이 덕훈의 대뇌에 전달했다.


모든 것을 숙지한 덕훈은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의 뱅킹앱을 켜서 음원 총공 총대에게 5만원을 송금했다.


덕훈은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마치 호라즘을 정벌하는 징기스칸의 병사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시각이 월요일로 가는 새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현타가 밀려왔다.


어쩔 수 없이 덕훈은 침대에 누워 2020년 마지막 월요일 출근을 위해 스마트폰 알람을 오전 5시15분에 맞췄다.


그리고는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덕훈은 감은 눈 아래로 마냥 올라간 입꼬리를 고정한 채 아이들을 처음 본 순간을 생각했다.




그건 2주간의 지방 출장을 마치고 하루 연차를 낸 2018년 5월말 어느 화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낮잠을 늘어지게 잔 후,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슬금거리며 일어난 덕훈은 냉장고 문을 열고 무알콜 맥주를 집어 들었다.


식탁에는 점심때 먹다 남은 탕수육 반접시와 서비스 군만두 3개, 그리고 국물이 3분의 2쯤 남은 짬뽕그릇이 궁상맞게 어질러져 있었다.


덕훈은 짬뽕국물이 담긴 그릇에 허술하게 쿠킹랩을 씌워 전자렌지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타이머를 3분에 맞추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전자렌지 속에 핀조명이 어두운 불을 밝히자 짬뽕국물은 왈츠를 추는 듯 “위~잉” 소리에 맞춰 천천히 회전을 했다.


덕훈은 식탁 귀퉁이에 천연덕스럽게 놓인 TV 리모컨을 손에 쥐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6시 내 고향”인지 “생생 정보통”인지 알듯말듯한 어떤 프로그램이 음식이 가득한 한상차림을 과시하며 삼성 LED TV의 액정을 빛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과시는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곧이어 덕훈의 빠른 손놀림이 리모컨의 채널 버튼을 눌러댔기 때문이다. 덕훈의 손가락을 따라 16분의 1박자로 바뀌던 채널은 일백오십몇번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덕훈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뿔테 안경너머로 TV의 액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건 화면 안에 마이크를 든 채 서있는 여자 MC 때문이었다. 그녀는 덕훈이 매우 선호하는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


덕훈이 그녀를 주목한지 3초도 되지 않아 그녀는


- 투표결과 공개해주세요!


라고 힘주어 말을 건넸다. 덕훈은 그녀 덕분에 자기도 모르게 투표결과를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다.


화면에는 아이돌로 보이는 세 그룹의 사진이 있었고 음원이니 사전투표니 실시간투표니 같은 익숙지 않은 말들과 숫자들이 보여 졌다.


집계 결과 “(여자)아이들” 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그룹이 1위를 차지했다.


그러자 그 여자 MC는


- 아이들! 축하합니다!


라고 더 힘있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카메라의 프레임은 어쩔 줄 모르며 꽃가루를 맞고 있는 여섯 명의 가수를 잡아주고 있었다.


당황과 우왕좌왕이 교차하는 그 순간 가장 좌측의 한 멤버가 쭈뼛거리며 트로피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금발 사이로 비춰진 얼굴은 몸 둘 바를 모르는 수줍은 눈빛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가 들린 손은 무거운 물건을 든 것처럼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네... 에... 일단은....”


이라고 운을 떼는 그녀의 음성을 듣자 덕훈은 자신도 모르게


“어... 전소연이다.”


라는 말을 내밷었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그 “전소연”이었다.



https://youtu.be/5c_fkBigU8o
덕훈이 여자 MC에 이끌려 보고 있던 그 음악방송 장면. 직접 확인해 보시길~




그때 “띵~”하는 소리와 함께 전자렌지는 짬뽕국물의 왈츠가 끝났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덕훈의 시선은 부엌으로 향했다.


서쪽으로 난 부엌 창문을 통해 직설적으로 들어오는 붉은 햇빛은 어쩌다 마주친 덕훈과 (여자)아이들과의 첫 조우를 어쩌다 몰래 드려다 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덕훈이 지금 지켜본 (여자)아이들의 1위 수상은 그녀들의 첫 음악방송 1위 장면이었다.



- 다음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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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 created by 카메론 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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