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조차 허락받지 못한 내면아이의 이야기
감정은 나에게 늘 복잡하고 어려운 존재였다.
무엇을 느끼든
"너무 예민하다"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는 말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점점 감정은 숨기는 것이 되었고,
나조차도 내 감정이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 아이가 슬픔을 꾹 참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을.
왜냐하면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지.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 감정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
내가 그동안 억눌러온 감정들은 나의 생존 신호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감정을 스스로 허락하지 못했고,
그 틈을 자아방어기제들이 메우고 있었다.
•부정: “그건 진짜 일어난 일이 아니야.”
•억압: “기억도 안 나.”
•분열: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투사: “그 사람이 문제야, 내가 아니라.”
•전환: “그냥 먹고 자면 괜찮아질 거야.”
•최소화: “별일 아냐. 그냥 그런 일이 있었을 뿐이야.”
이 모든 건 내 안의 작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픔을 모른 척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던 그 시절,
나는 그 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며 어른이 되었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혼났고,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어.”
이런 믿음은 지금도 깊이 남아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면
‘역시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으로 쉽게 빠져든다.
그런데 책은 말해준다.
“지난 아픔은 현재 내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아이에게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그 말이 가슴 깊이 들어왔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다만, 너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그 상황들이 너무 가혹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억누르는 걸 강함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강함이란,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이 아닐까.
감정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내면아이와 손잡는 첫 번째 순간이다.
나는 지금 그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있다.
“이제 괜찮아.
너는 그때 충분히 슬퍼도 되는 아이였어.
그리고 지금은 내가 네 곁에 있어줄게.”
다음 글에서는 '갓난아기였던 나'를 만날 예정입니다.
그 시절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묵상을 통해 따뜻하게 껴안아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여러분의 내면아이에게도
조용히 말을 걸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