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린 Apr 04. 2024

ep38. 신혼집 인테리어

나름대로 미니멀 라이프

"안 예쁜 건 우리 집에 못 들어와."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이쁜 것만 현관문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비싼 값 하는 우리 집구석 한 칸을 온전히 내어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깐깐한 기준을 넘어야 하는데,

첫 번째 기준은 '필요한가?'이고 동시에 만족시켜야 할 두 번째 기준은 '예쁜가?'이다.

 

하지만 이미 집에 들어와 있는 것들은 어찌해야 좋을지..


짝꿍과 나는 둘 다 결혼 전 자취를 했다.

때문에 신혼집을 구하면서 필요에 의해 새로 산 혼수품도 많지만,

버리기 아깝다는 이유로 자취할 때 쓰던 것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많다.

절약 겸 물건을 아껴 쓰며 우리의 통장과 지구에 작게나마 도움이 됨은 분명하겠으나 그 물건이 서로의 취향을 반영하지는 않은 탓에 자꾸만 심기가 콕콕 거슬리는 것은 둘 중 오직 나에게만 해당된 듯하다. (인테리어에 무심한 짝꿍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꼭 마음에 드는 하나의 물건만을 사서 소중히 오래오래 쓰는 것이 미니멀한 삶인데..


그래, 좋아. (난 미니멀리스트니까!)

가구를 새로 사지 않고 일단 가져온 것들 모두 그대로 쓰기로 했다만 아, 근데..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침대와 거실 테이블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침대는 시트와 베개커버, 이불을 갈아주니 제법 봐줄 만 한데 거실 테이블을 무슨 짓을 어떻게 해도 도저히 맘에 들지가 않았다.

테이블 보를 덮어보아도, 이리저리 옮겨보아도, 볼 때마다 거슬리니 미니멀라이프고 뭐고 그냥 눈에서 치워버리고 싶은 심정.


그러나 바꾸기에는 너무나 새것 같고 실용성도 좋은 아이템이다. 다만 예쁘지가 않을 뿐.

게다가 마음에 드는 거실 테이블을 검색해보니 가격이 한 두 푼이 아니다. 새로 사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몇몇 아이템들을 위시리스트에 담아만 놓고 있기를 몇 주째.

일단은 새로운 거실 테이블을 사는 건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눈앞에 저 테이블을 없애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다.

그 거실 테이블은 식탁 겸 모임의 용도로 쓰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우리 집엔 큰 식탁이 있기 때문에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거나 모임을 갖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는 건, 필요 없다는 거잖아?

미니멀리스트로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우리 집에 두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지.


귀찮음을 핑계로 계속 미루고만 있다가 드-디-어 당근에 올렸다.

무료 나눔을 많이 해서 무나천사로 닉네임을 지었지만 오늘만큼은 반값천사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현재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올렸다.


그러자 어느 한 사람이 바로 채팅을 보내왔다.

어딘가 어설픈 파파고의 말투로. (외국인이었다.)

내용인즉, 내가 올린 값이 너무 비싸니 3만 원 정도 깎아서 팔란다.

무나천사는 고민했다. 이 녀석을 당장이라도 팔아치우는 게 목적이니 그냥 그 값에 팔까?

아니면 오늘 올렸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결국 무나천사는 일주일 후에도 구매희망자가 없으면 그때 당신이 원한 가격에 판매하겠다는 기약을 남겼다.


그리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일주일을 넘기기 바로 직전, 다행히도 구매희망자가 나타났다!

얏호- 저 골칫덩이를 제 값(?)에 팔아치울 수 있다니!

그 시각, 늦은 밤 11시였지만 난 아무 상관없으니 (오히려 좋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오셔서 업어가셔라 하고 거실 테이블을 곱게 보내드렸다.


.

.

.


그렇게 두어달쯤 지났다.

우리 집 거실은 아주 큼직하게 넓어졌으며, 여전히 그 자리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지 않은 채 비워져 있다.

종종 그 공간은 고양이가 배를 깔고 드러눕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그루밍을 하는 등의 시간을 보낸다.


아마 앞으로도 이대로 쭉 유지될 것이다. 당분간은.

아이가 생겨 태어나게 된다면 아이의 놀이터가 들어설 테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무것도 눈에 거슬리는 게 없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누가 그랬지. 결혼이란, 한 사람의 인생 전부가 딸려 오는 것이라고.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모든 물건들이 나와 뒤섞이게 되는 것. 그것이 결혼.

비록 나는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물건을 처단하였으나,

그것이 비워진 공간 위에는 우리의 추억과 시간으로 켜켜이 쌓아갈 것을 분명히 약속하는 바이다.

작가의 이전글 ep37. 기왕이면 다홍치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