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하객맞이
"어떤 결혼을 하고 싶어?"
"난 8월에 결혼하고 싶어. 푸르른 여름에, 난 여름을 좋아하거든. 사람들이 8월엔 결혼을 많이 안 해서 비수기라더라. 난 그게 더 좋아. 그리고 처음 만난 날에 결혼하고 싶었는데 또 마침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8월이다?! 8월에 하면 딱일 것 같아. 그리고 또.. 음.. 신부대기실에 앉아있지 않으려고. 나는 공주처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단 직접 나가서 신랑이랑 같이 하객 맞이 하고 싶어."
물어본 이는 내 대답을 듣고서 '너답다'고 말해줬다.
나다운 결혼식?
내가 하고 싶은 결혼을 말하면 사람들은 특이하다고 하고 때론 특별하고 재밌을 것 같다고들 한다.
모름지기 청개구리 신부라면 남들 다 하는 뻔하고 지루한 건 피해야지.
그래서 고안해 낸 여러 아이디어가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 신부의 하객맞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안타깝게도 8월 결혼은 실패했다. 우리는 4월에 결혼한다.)
그렇지만 하객맞이만큼은 실패하지 않는다. 나는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어제 말했듯이, 본식날 입을 드레스를 고르러 다녀왔다.
샵에 가면 딱 4벌을 피팅해 볼 수 있는데 (물론 돈을 더 주면 더 입어볼 수야 있지만) 공짜기회는 딱 4번뿐이니 어떤 4벌을 골라 입느냐.. 하는 것도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
후보를 선정함에 있어서 여타 조건들이 가득했지만 그중에 나의 1순위 조건은 바로 '하객맞이가 가능한 드레스인가'였다.
풍성하고 트레인이 길게 끌리는 드레스는 아름답기야 너무 황홀하고 웅장하도록 아름답지만 로비에서 하객을 맞이하기에 곤란한 의상이다.
드레스자락으로 로비 바닥을 다 쓸고 다니며 청소를 할 게 아니라면, 하객분들이 바로 옆에 서기조차 힘든 옷을 입고 하객맞이는 좀 그렇지.
신부대기실이 존재하는 실질적인 이유도 '공주님처럼 가만히 앉아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은 '크고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때문에 움직이기가 불편해서'이기 때문에.
오시는 손님들의 걸음걸음을 반갑게 맞이하려면 가급적 슬림하고 단순한, 옆으로 많이 퍼지지 않고, 뒤로 질질 끌리지 않는 드레스를 골라야만 했다.
(그전에 먼저는 반드시 드레스샵에 양해를 구해야 하고.)
드레스 투어를 갔을 때도 샵을 선정할 첫 번째 조건은 '로비에서 하객맞이를 허락해 주는 곳인가'였다.
다행히 슬림한 드레스라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그렇게 피팅을 진행했다.
하지만 드레스투어 후 본식 드레스 셀렉까지 약 8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렀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 한번 더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드레스샵에서는 신부대기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쪽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베일이나 드레스 끝자락을 누가 밟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신부에게 손해배상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수선이 어려울 경우 그 드레스는 버려야 하니까.)
"어떤 스타일로 입어보시고 싶으세요?"
"로비에서 하객 맞이하려구요, 그래서 슬림한 스타일로 입어보려고 해요."
그러자 피팅을 도와주시던 원장님께선 반가워하면서 본인도 결혼할 때 로비에서 하객맞이를 했다며
오래 서 있어야 하니 발이 아플 것이라 편안한 신발을 신으라는 꿀팁까지 전수해 주셨다. 꺄아.
그리고 하객맞이에 적절함과 동시에 나의 로망과 체형까지 고려한 완벽한 드레스 4벌을 선보여주셨다.
(덕분에 4벌이 다 마음에 쏙 들어 고르느라 애를 먹었다. 이틀 동안 잠도 못 자고 밤새 드레스 생각만 하다가 흰머리가 2개나 났다니까는. 휴)
흰머리까지 감수하면서 고르고 고른 드레스는 지금 다시 보아도 마음에 쏙 든다.
이 드레스를 입고 로비에서 나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오는 소중한 사람들을 반기어 줄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불러주어야지.
같이 사진도 찍고!
'엥? 신부가 왜 신부대기실에 있지 않고 나와있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
하지만 신부 혼자만 신부대기실에 덩그러니 앉아 구경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일.. 즉, 동물원 원숭이 취급이 싫어 로비에서 하객맞이 하는 신부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도 그 계열에 올라타 같이 발맞춰 걸어가 보려고.
결혼식에서 손꼽아 기대되는 일 중에 하나다.
나중에 후기도 꼭 작성하겠습니다!
+
사실 드레스는 총 5벌을 피팅했다.
원장님께서 너른 아량으로 풍성한 드레스도 '입어만' 보라고 서비스로 입혀주셨다.
그리고 그 드레스를 입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며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어머, 이건 내 거야."
하얗고 고귀한 드레스를 입자마자 내 머릿속엔 결혼식날 진풍경이 절로 그려졌다.
풍성한 꽃장식이 가득한 신부대기실에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늘어뜨리고 앉아 사진을 찍으면
세상 누구보다 단연 빛나고 예쁠 것 같았다.
하... 이걸 어쩜 좋아.
그러나 감내해야지.
이 드레스는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한 드레스였지만 단 하나, 하객맞이를 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알면서도 포기가 안되고, 오히려 하객맞이를 포기하고 얌전히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고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강한 드레스였다.
내 흰머리의 주범은 어쩌면 이 녀석 때문이었는지도. (포기해야 하는데 포기가 안되니까. 흑흑.)
그렇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었다.
이 드레스를 입지 못하는 것과 하객맞이를 하지 못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후회될 것 같은지 20번을 고민한 결과 아무쪼록 하객맞이를 못하는 쪽이 더 후회될 것 같아서.
그만큼의 염원으로 이뤄낸 일이니 부디 좋은 반응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어차피 신부는 뭘 입어도 예쁘니까!
내가 뭘 입었는지는 아무도 기억 못 할 테지만, 내가 로비에서 반겨주었다는 건 다들 기억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