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영 Dec 08. 2021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것

< 사랑이 뭘까 > (2018)

나는 내가 없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던가. 영화를 보는 도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서랍을 뒤지듯이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딱 한 사람 기억이 났다. 내가 아닌 나를 바라던 사람. 몽타주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을 닮게 하려 애를 썼던 사람. 그 사람이 떠올랐다.


과거의 연인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그는 내게서 필사적으로 그를 찾았다. 조금이라도 닮은 모습이 보이는 날에는 끝없는 사랑을 고백했다. 둘 중 어느 한 사람도 행복하지 않았다. 매일 밤이 후회로 가득 찼다. 그렇게 밤새 뒤척이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잘해보려 노력했다. 내가 생각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가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상처를 회복하고 끝에는 나를 바라봐줄 거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리고 믿고 싶은 미래는 오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돌연 전화번호를 바꾸고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렸다. 잘 가라는 인사조차 없이 그렇게. 종종 발신 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는 나에게서 멀어질 거라고 했다. 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휴대폰을 꼭 쥐고 다녔지만 결국에는 슬픔에 지쳐 포기하게 되었다. 나 역시 전화번호를 바꿨다.


사랑이 뭘까. 어떻게든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게 사랑일까. 누군가에게는 유효할지 몰라도, 내게는 아니다. 내가 없는 사랑은 하고 싶지도, 사랑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래의 나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걸을 수 있는 속도로 다가갈 수 있어야 넘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건강하게 나눈 마음. 그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시간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뒷 이야기가 어떻더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