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였다. 인천에서 출발한 시외버스를 타고 잠실에 도착한 나는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지나 지하철역으로 들어섰다. 언제 마지막으로 왔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잠실역. 오래지 않아 열차가 도착하고 성수에서 Y를 만났다. 그새 비는 그치고 다시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증기가 우리를 감쌌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골목의 한 소바집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신 다음 성수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문화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를 관람했다. 보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감동은 주지 못하는 듯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참새가 방앗간을 들리듯 우리는 전시장 옆에 위치한 기념품샵을 방문했고, ‘너무 귀여워’를 연발하며 고민하는 Y와 달리 나는 전시에 함께 참여했던 한 작가의 리커버 에디션 소설책 하나에 만족했다. 하필이면 그나마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은 기념품화 되지 못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 싫증을 잘 내는 나를 이제는 잘 알기에 예쁜 그림이 찍힌 엽서나 책갈피 등에도 기분 좋은 눈길만을 건넸다. 저녁 먹기 전까지 성수 이곳저곳을 마저 둘러보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 두 세명의 사람들이 한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한 화장품 회사의 플래그쉽 스토어 건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역 근처까지 걸어오며 더위에 금방 지쳐버린 우리는 열도 식힐 겸 구경이나 하자며 그 뒤를 따라 들어섰다.
브랜드는 익히 아는 브랜드라 신기할 것은 없었지만 내부 인테리어나 자사 제품 체험을 위해 마련된 여러 공간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공간이 성수에는 참 많은 것 같다고 부러워하며 처음 보는 마스크팩을 구경하고 있던 찰나, 모자를 쓴 한 여성분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OOO(브랜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데 혹시 5분 정도만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와 Y는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웃으며 어찌해야 하나 난감해하고 있었다.
“어려운 질문 아니에요, 상품권도 준비되어 있어요!”
상품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유튜브라니. 분명 우리의 얼굴이 나올 텐데, 하는 마음에 망설여졌다. 그런데 문득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은 어색하게 웃으며 해보겠다고 이야기했다.
질문은 자기소개로 시작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아름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가방 속 나를 대표하는 물건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 이어졌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흘긋거리기도 하고 잘 대답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긴장해서인지, 인터뷰가 끝나고 났을 즈음에는 그 추울 정도로 시원한 공간에서도 내 겨드랑이와 등은 땀에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다행히도 질문의 취지에 맞는, 그리고 정확히 원하는 답을 해주셔서 너무 좋았다고 말씀해 주셨고 나름의 뿌듯함도 느껴졌다. 그 뒤로 우리는 평소 눈여겨보던 립스틱도 발라보고 손등에 크림도 발라 킁킁 냄새도 맡아보는 등 열심히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터뷰와 관련해 여러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과연 내가 대답을 잘했을까, 더 똑똑하고 조리 있게 얘기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그 얘기는 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들. 그래도 유튜브에 나오는데 예쁘게 나와야 할 텐데, 내 얼굴의 못난 점이 돋보이지는 않을까 같은 또 다른 생각들. 안절부절못하며 뛰어다니던 생각들은 어느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웅변에 나간 것 아니잖아, 토론회에 나간 것도 아니었고. 단순한 인터뷰였어. 너의 생각을 가볍게 얘기한 것으로 충분해. 재밌었으면 됐어, 더 이상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에 대해 걱정하지 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냐.‘ 재미있는 한 번의 경험이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과몰입한 나를 발견한다. 뭐 하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은 나, 또 잘하고 싶었구나. 내 생각들을 사람들과 솔직하고 기분 좋게 나눈 것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뷰에 응할 사람을 찾느라 야근하지 않고 정시 퇴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사진 출처 Unsplash_CoWo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