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과 살아가기
전셋집의 계약일이 끝나가면서 계약을 갱신할 때가 되었다. 전세 사기가 판을 치는 요즘, 사소한 방심도 금물이라는 생각에 예민해졌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대로 확인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뒤 도장까지 찍었지만, 보증금에 대한 행정적인 절차가 신경이 쓰이면서 믿을만한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다음 날 연락을 취해보기로 했는데 이미 내 머릿속은 온통 그 문제로 가득했다. 저녁 식사 중에도, 설거지 중에도, 식사 후 애니메이션을 보는 중에도, 남편과의 대화 중에도 혹시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고 누군가로부터 문제없다는 확답을 한시라도 빨리 받고 싶었다. 그런 나를 눈치채고 괜찮다며 일단 내일 물어보자고 달래는 남편에게 나는 맥없이 웃으며 알겠다고 했지만 확답을 받기 전까지 나는 조급함과 불안함,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혼자 소리 없이 절규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확실히 불확실성이 ‘매우’ 불편하다. 최근 많은 일들을 겪으며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어떤 일 혹은 상황이 뚜렷하게 정리되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거나 혹은 왜 그동안은 깨닫지 못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누구나 그렇다고 한다면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특히 학생 때는 결론이 나지 않는 일이 많지 않았다. 공부를 해서 성적을 받고, 그 성적으로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시험 날짜는 정해져 있고, 결과는 대체로 노력한 만큼 나오고, 결과를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할 일이 있다면 하나하나 해치우며 좋든 나쁘든 결과를 받아 처리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그런 식으로 결과가 금방, 그리고 딱 떨어지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절차가 길어 단 시간 내 해결을 볼 수 없거나,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어떤 부분에서 틀어질 수 있거나, 혹은 결론이 나더라도 성공 혹은 실패로 결정지을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반드시 예전처럼 당장 ‘해치울’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런 것들의 불확실성이 차곡차곡 쌓여 마음 한 구석에 항상 짐이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익숙하지 않은 묵직하고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날이면 온 신경이 그 불편한 느낌에 집중되었고 당장이라도 해결해서 어떻게든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루종일, 며칠 내내 조급해하기도 했다.
나는 이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편함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 과연 내가 이 불편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 삶에서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곧 삶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삶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결국 불확실성과 살아가는 방법,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 다른 한쪽에는 그래도 괜찮아, 침착해 라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만큼 마음의 크기를 넓히는 것. 그것이 내가 배워야 할 것이 아닐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의 바다에서 파도가 아무리 무섭고 두렵더라도 절대 죽지는 않으니까.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국 뭍에 닿게 될 것이니까. 그리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미지의 것들이,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 어쩌면 우리 인생을 더욱 인생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사진 출처 Unsplash_Matt Har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