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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Mar 18. 202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3)

다섯번째 단편, 파종


우리는 작은 텃밭을 함께 가꿨다.-

이 주일 전, 소리는 그녀에게 학교를 관두고 싶다고 말했다.


-> 작은 텃밭을 함께 가꿨다. 소리는 학교를 관두고 싶다고 말한다. 

작은 텃밭과 학교를 관두는 것은 일상에선 전혀 관계가 없을 일이지만

개인의 서사로 들어가면 관계가 없을 사건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텃밭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소리는 학교를 관두고 싶어 했을 것이다.


소리는 그와 그녀와 함께 텃밭을 가꾸던 시절에 관해 썼다. 셋이 같이 텃밭에 가서 일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새참도 먹은 이야기를 했다.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억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 이후 더는 텃밭에 가지 않게 된 일에 대해서도 소리는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 그녀는 소리에게 아픈 기억을 남기지 않으려 했지만, 소리는 그녀 모르게 기억을 글로 남김으로써 간직하고 있었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그랬지.-

근데 난 이게….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 소리와 그녀는 그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고, 둘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그의 텃밭에서 공유한다. 



.

여섯번째 단편, 이모에게


나는 이모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말을 하는 이모의 감정만큼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모는 슬퍼 하고 있고 그 슬픔은 내가 알지 못하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어른이 말하는 슬픔의 무게를 넌지시 알 수 잇는 나이가 되면, 그 나이에 비해 한층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 말의 무게와 함께 살아갈지도 모른다.


오늘은 왜 들어갔어?

널 자랑하고 싶었나보지.


-> 감정을 좀 처럼 내비치지 않는 이모는 가기 싫은 곳에 가서 화자를 자랑한다.

화자가 이모를 좋아하 듯, 이모 역시 화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너 어릴 땐 네 마음 여린 게 그렇게 불안해서 고치려고 했어-

그럼 성공했네 나, 마음 돌이 됐거든-

이모를 은근히 무시하고 하대하는 아빠의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나는,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언제나 이모를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인 것처럼 군다고 삐딱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모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내 모습을 부정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모의 몇 벌 되지 않는 옷가지들을 만지면서 나는 그것 또한 나의 모습임을 인정했다. 그러한 판단이 이모라는 사람의 진실과는 무관하다는 사실도.


-> 화자는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이모의 모습이 싫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딱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며 어느 덧 이모와 닮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일곱번째 단편,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그러자 우경이 개수대에 서 있는 제인에게 영어로 뭐라고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이 났다. 제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우경은 더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우경은 더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이클이 우경에게 영어로 무슨 말을 하고 나서야 우경은 말을 그쳤다. 

분명한 긴장감이 부엌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 딸을 보러간 홍콩에서 어색함이 감도는 장면이 나온다. 영어는 차이를 만들고, 관계의 거리를 만든다.



언닌 알코올중독이야


-> 어쩌면 가족은 가깝지만 가장 먼 관계일지도 모른다. 

가족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도, 가족이기 때문에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선택을 할 수 없고, 주어진대로 정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경과 제임스가 복도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임스가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듯했다. 평소에 한국어로 대화하는 그들이 어쩐 일인지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계속해서 기남은 그들의 대화에서 거리감과 어색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억양과 분위기로 인해 좋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캐리어에 든 물건 대부분은 우경의 가족에게 줄 먹거리와 선물이었다. 우경에게서 마이클이 거북이를 좋아한다는 걸 들은 이후로 기남은 거북이 모양의 인형과 장난감, 스티커, 거북이가 나오는 그림책 등을 모아왔었다. 그 모든 것이 도착하지 못한 캐리어 안에 있었다.


-> 자신의 실수로 인해 생각했던 장면들을 이루지 못하게 될 때, 그것이 자신의 나이듦으로써 인한 일일 때, 패배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물건을 잃어버려서, 또는 길을 잃어버려서 우연히 닿는 것들이 있다. 가까운 딸의 언어는 낯설었으나, 낯선이에게는 가까움을 느꼈으니까.


기남은 부끄러웠다. 우경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 그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코올 중독이, 그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코올중독이, 두 아이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사실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 기남은 낯선 곳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어느 것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는 실패한 시간들을,

기남은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워도 돼요.


-> 소설은 마지막 기남이 마이클에게 자신의 모든 삶과 일련의 일들이 부끄럽다고 말했고,

마이클은 부끄러운 감정을 귀엽다고 말하며 부끄러워도 된다는 말을 한다.

때로는 어린 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더 명쾌한 대답을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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