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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Mar 16. 202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

세 번째 단편, 일년


이런 번거롭고 고된 일을 선호하는 사람은 없어서 그녀가 일을 맡기 전에도 여러 번 담당자가 바뀌었다. 그런 일에 그녀가 지원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자주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혼자서 하기에는 많은 양의 일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자기 존재를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시기였다.


->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 일이 내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떤 일은 안정된 그들에겐 구차한 일이지만 어떤 일은 누군가에겐 스스로를 위한 일일 수 있다.


그런 정보를 사람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다희를 보면서 그녀는 다희가 솔직하지만 아직 미숙하여 경솔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곳에서 상대에게 미리 자기가 지닌 패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다희는 인턴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고, 여자였다. 그런 경솔한 행동이 득이 될 리 없는 위치였다. – 

다희의 솔직함은 사람들에게 흠만 잡힐 경솔함이 아니었다. 솔직하되 스스로 낮추는 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실수를 해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할 뿐, 자학하듯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할 때 어떤 것까지 오픈해야 할까. 

누군가에겐 그런 솔직함은 경솔함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거 노지 귤이에요. 보면 흠이 많고 껍질도 두껍고 예쁘지 않고 맛도…. 솔직히 말하면 신 맛이 강하잖아요. 처음에는 맛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먹다보니까 다른 귤이 맛없어지더라고요. 손바닥 대보세요.


-> 상품성이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겐 의미 있는 것일 수 있다.


다희씨 참 웃겨요. -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말해요. 너 참 재밌다. 웃긴다. -

그러다가, 실망하는거죠. –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잃고 싶지 않으니까 무리를 하게 돼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 

다희 너는 깊이가 없어, 얉아, 그래서 좀 질려. – 

선배 차에 타면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와서… 다희가 말했다. –

자신에게 경계를 허물어준 다희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숨김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다희의 마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 화자는 계속해서 스스럼 없이 다가오는 후배에 거리를 느낀다. 회사에서는 늘 거리를 두며 살아왔던 것이 익숙했는데 카풀을 하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마음을 낯설어 하고 어려워한다.


기계는 감정이 없고, 그래서 기쁨도 슬픔도 불안도 느끼지 않고, 변덕을 부리지도 않고, 누굴 속이지도 않고, 자기 모습을 감추거나 매번 바꾸지 않으면서도 훼손되지 않는 단단한 존재라고, 그래서 발전기를 보고 있을 때면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 

처음에는 스터디 사람들도 저를 위로해줬어요. 안됐다고. – 

어떻게 다희씨 주변에는 이런 일들이 이렇게 잦아요? 어떻게 매번 누가 죽어요?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나왔던 나를 상처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다.

처음엔 아니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피해에 대해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다.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다희가 물었다.


-> 차 안은 다희의 말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말을 하면서 세계는 확장된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그녀를 피로하게 한 건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무의미하고 진부한 말들이었다. 현재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자랑하는 말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생각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자기 특권을 과시하는 사람들.


->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성이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대개 무례한 언행을 한다.  


그녀는 그런 상황에 체념한 채로, 그 모든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고통스러웠지만 살아졌고, 그녀는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겉돌지 않았고,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했다. 


-> 그녀 또한 다희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살아지고, 사라졌던 시간으로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한 것이다.


지수씨 같은 신입은 억울할 거야. 고졸 특채들이랑 같이 신입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들어왔으니. – 

겉으로야 같은 입사 동기지만 다 형식적인 거고. 우린 걔네들 후배로 생각 안 해. 그러니 걱정마요. – 

그녀는 분명 안도했고, 그런식으로라도 자기 존재를 인정해주는 그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차별하는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있게 한 그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서울에서 그녀가 본 건 기쁨과 안도가 스민 진짜 웃음이었다. – 그때의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다희에게 말하지 못했다.


->  자신은 아닌 줄 알았지만 결국 같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나은 위치에 속해 있음으로써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본 것이다.


어릴 때는 터널 지날 때 숨을 참았어요. – 

숨을 참고 터널 다 지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서요. – 다 잊어버렸어요. – 

이제는 저를 위해 빌지 않아요. 바라는 건 있지만 누군가에게 빌지는 않아요. 


-> 그녀는 계속되는 다희와의 시간으로 다희와의 관계를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

선배는 빈말 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

다희와 함께 출근하던 마지막 한 달 동안, 둘은 그날 일을 입에 올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대화했다. 그것이 그녀는 슬펐는데, 다희도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는….. 다희씨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좋아하게 됐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에요.


-> 다희와의 관계가 한 순간에 비틀어져버리는 순간, 그녀도 다희도 모두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저 서로가 다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아팠나요. 다희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다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차 안에서 함께 했던 시간동안 스스럼 없이 다가왔던 다희, 그리고 그것을 알지만 거리를 느껴야 했던 그녀. 아팠냐는 질문에 그제야 아팠다고 고백하는 그녀의 답변으로 그녀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열 수 있었다.


네 번째 단편, 답신


아주 오랜 시간 나는 우리를 두고 떠난 엄마를 미워했어. 파렴치한에 뻔뻔하고 양심도 없는 사악한 인간이라며 저주했던 시절도 있었지. 그때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엄마에게 돌리는 게 내 인생을 가장 합리적으로 감당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 나는 내게 벌어진 많은 일들을 모두 그 이유로 쉽게 설명할 수 있었어.-

나는 이제 나보다 한참 어린 여자애를 바라보듯이 내 마음속 엄마를 바라봐. 어리고, 슬프고, 고립되고, 힘이 되어줄 사람 하나 없는, 자기편 하나 없는 어린 사람을 봐.-


-> 아무리 미워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은 옅어지며, 때로는 애틋해진다. 어떤 감정일까. 아무래도 공감일 듯 하다. 어느덧 그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리고, 슬프고, 고립되고, 힘이 되어줄 사람 하나 없는, 자기편 하나 없는 어린 사람을 보면서.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언니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됐어. 아닐 거야. 나 자신을 열심히 설득하려 했지만 언니는 자신을 숨기는 일에 서툴렀고 나는 그런 언니에게 분노를 느꼈어. 이럴 거면 제대로 숨기라도 해. 마음 속으로 소리쳤지.-

나는 언니에게 그렇게 기대고 그렇게 의지했으면서 정작 언니에게 전혀 힘이 되어주지 못했구나. 언니의 허기진 마음을 조금도 채워주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고작 열여덟 살이었던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니. 나는 언니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지 못했어. 언니의 상처를 피부로 느끼면서도….. 그건 너무 무력한 기분이었지.


->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는 최선의 전쟁을 치루며 살아간다.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 그러기에 최선은 각자가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래야한다. 


너는 마치 작은 사탕을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녹여 먹듯이 사랑이라는 말을, 영원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하기를 좋아했어. 너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나도 네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걸 알았지. 그리고 내가 너에게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던 것 같아.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든지,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는 너를 사랑하리라고 느꼈던 거야.


-> 사랑이라는 최종역에는 아마 이런 감정이 아닐까. 영원히 사랑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느끼는 것. 


형부 지금 뭐하는 거예요? – 

우리 반 애랑 상담할 게 있어서 그래. -

선생님처럼 저에게 잘해준 사람은 없었어요 –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 

선생님은요. 그럼 선생님은 어떡해요. – 

신고는 안 돼요. – 

그애만 타격받으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 

난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 걸까. – 

언니 왜 그랬어요? 신고 안한다고 했잖아요. – 

너 꼴통이야? – 

언니도 이렇게 때렸니. – 

언니도 때렸니… - 

나는 더 이상 언니를 믿지 않는 나를 발견했어. – 

그애는 학교를 관뒀고 가끔 나를 원망하는 문자를 보내왔어. – 

오래 미워했을 거야. – 

언니는 더는 나를 믿지 않네 – 

문제 있는 애였대. 형부는 잘 달래려고 했었고, 작년에 둘이 같이 있는 걸 네가 봤다며. 오해하고 신고한 거라며.” - 


- 서로 다른 지점에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지켜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내가 아직 스물두 해밖에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 벌써 백 년은 산 것 같은데, 이미 너무 오래 산 것처럼 지쳐버렸는데 아직도 스물둘이래. 밤하늘 아래의 불빛들이 반짝이면서 너는 앞으로도 살아야 해, 살아가야 해, 하고 낮게 합창 하는 것 같았어.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이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고 자꾸만 누가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지. -

하지만 나는 그날 언니의 믿음을 완전히 부정했지. 언니의 삶을 다른 사람에 의해 이미 망가진 것으로 취급했어. 내가 언니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언니를 가르치려 했어. 언니의 삶이 망했다고 판결했어. 그것이 나를 어린 시절부터 돌봐준 언니에게 내가 한 보답이었다.


-> 화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랬지만, 화자에겐 언니의 삶이 더 중요했다. 그것이 안타까운 구절이었다.


너라면 어땠을 것 같아. 네가 나였다면 그 순간 어떻게 했을 것 같니. 그때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대도 나는 같은 행동을 할 거야.


->  화자는 큰 벌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에 큰 벌을 받게 한다. 그것은 언니를 위한 길일 수도 있고, 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행동일 수 있다. 이렇게 화자는 보내지 못하는 글로 사랑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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