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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Mar 15. 202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1)

첫번째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이 수업의 목표는 영어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 우리 말이 아닌 외국어로 진행 되는 수업이 시작된다.

영어는 외국어중 가장 익숙한 언어지만, 익숙하다고 해도 영어로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고 한국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 질의응답이 끝날 무렵에는 내가 그녀의 수업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희미한 예감이 들었다.


-> 어떤 첫 만남에서 그것이 좋아질거라는 예감이 있다. 그 시간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단순하다. 

그러나 희미한 예감이 들었다에서 아직 화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경계를 둔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 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09년 2학기, 구 년 전 그때 나는 스물일곱의 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생이었다.


->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지 찾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는 일이지만, 화자는 그 방법을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을 언어화 할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더 이상 헤메이지 않고 스물일곱의 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생이 된다.


그곳은 용산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그녀는 이어서 그렇게 썼다.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 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 수업에서 만난 강사로 인해, 자신과 강사의 공통점인 용산을 발견한다. 그리고 강사 또한 영어를 배웠던 이유를 알게 되며 언어에 대한 치료에 대해서 공감한다.


나는 그 글이 지닌 거칠고 강한 느낌이 좋았는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글의 결론이 모호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발표자는 자신이 평소에 느끼던 생각을 적은 것일 뿐, 특별한 주제를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 같은 글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평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화자의 글처럼 직접적인 부분이 없다면 자신이 가진 언어의 세계에 갇힌 글이라고 생각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작고 마르고 뼈대가 가는 사람이 그때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그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앞 서 있는 사람은 커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화자는 강사에 비해 체격이 컸어도 강사는 더 큰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복제 인간인 캐시가 죽음을 앞두고 계속해서 헤일셤에서의 일을 기억하려 하는 것이 아름다웠다고 답했다. 캐시는 헤일셤을 기억하는 행동으로 자신의 친구 루스와 토미의 영혼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자기 자신의 영혼조차도. 헤일셤은 그러니까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캐시 자신일 수도, 루스일 수도, 토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떠나지마에서 나오는 내용을 용산에 빗대어 대화한 글이었다. 그녀들에게 용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다음 문장이 어떻게 완성되었을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떤 문장이든, 그녀는 내가 자신보다는 나은 경험을 하기를, 자신이 겪었던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 다음에 나 올 말을 어떻게든 만들었지만 그것이 끝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사는 분명 화자를 아끼며 조심스럽게 문장을 이어갔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말하는 건 괜찮았다. 그렇지만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선생님이자 선배인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나를 슬프게 했다. 


->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관계의 거리에 따라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한다.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았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 어떤 글은 인생을 나아가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가보고 싶었다는 화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문장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도 그토록 조급하게 사람들을 몰아내고 건물을 부수었던 자리는 공터로 남아 있었다. 내가 늦깎이 대학생에서 대학원생으로, 시간강사로 나아가는 동안, 빛나던 시간 강사였던 그녀가 더 이상 내가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동안에도 그곳은 여전히 빈터였다. 나는 이제 그곳을 피해 지나가지 않는다.


->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 있다. 그 현실에 부딪힐 때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하고 피하다보면 편할 수는 있겠지만 해결은 되지 않는다. 화자는 이제 그곳을 피해 지나가지 않는다. 

 


두번째 단편, 몫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이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기운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글을 막 쓰기 시작할 때,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여 사회의 부조리함을 찝어내서 영향을 주고 싶었다. 이것이 무의미하다고 해도 작게라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 생각이 잘 보이지 않아요. 해진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자기 목소리를 넣어서 글을 다시 써야합니다. 충분히 의견을 개진했다고 생각했기에 당신은 당황했다.- 

희영이 가진 장점들의 상당수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몇 가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당신은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날이 길었다.


-> 앞선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나온 내용과 비슷한 누군가에 대한 글을 평가하는 내용이다. 글을 소재로 하다보니 겹칠 수 있는 화두다. 희영이의 가장 큰 장점은 상처에 대한 공감과 직관이다. 그 장점은 삶에선 그리 좋은 장점은 아니었다. 그래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떠나갔고, 남은 건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왜 용욱이었을까.  – 

난 정윤이를 존경해. – 

어쩌면 희영은 그때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정윤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정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정윤이 자신보다 더 돋보이는 것을 경계했던 용욱의 마음을 꿰뚫어보았는지도 모른다고.


당신은 지나가는 말로라도 희영에게 칭찬을 한 적이 없었다. 희영의 통찰력, 글쓰기 능력, 절제력을 갖고 자기 삶을 운영하는 능력에 대해서, 희영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어떤 의미에서 강한 사람인지 이야기해야 했던 사람은 당신이었는데도.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순간 당신의 초라함이 더 분명해지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과 칭찬하는 것은 자신보다 나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는 그렇지 않을 때 존경한다는 것과 칭찬하는 것도 어떤 부분에서 평가가 되어 버린다.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에서 그런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여자가 맞아서라도 가족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라는 가족주의에, 살려달라고 공권력의 보호를 청했던 수많은 여자들이 결국 살해당해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당신은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깨어 분노에 휩싸였다.


-> 화자는 자신이 써야 할 내용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 할수록 감정에 휩싸인다. 


아니요. 남편을 죽여야만 아내가 살 수 있는 사회구조의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 부분이 빠져서는 안 되고요. 왜 여자들이 경찰을 불러도, 이혼을 하고 싶어도 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제가 다음 글에서 분석했으니 읽어보세요.  


-> 폭력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더 넓은 구조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글쓴이의 집념이 돋보였다.


그다음 회의 자리에서 희영은 처음으로, 자신이 쓰고자 했던 주제를 자기 손으로 폐기했다. – 

희영이 왜 더는 정윤을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는지 당신은 아직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다.


-> 그토록 자신이 쓰고자 했던 것에 모든 논리로 무장했던 희영은 자신이 쓸 글을 끝내 자신의 손으로 폐기한다. 희영은 자신의 기획에 대해 반대했던 용욱과 정윤을 미워했을 것이다.


그다음 학기가 되었을 때, 3학년이 된 희영, 4학년이 된 정윤과 용욱이 편집부를 떠났다. 언제나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당신이었지만, 당신은 졸업반이 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 당신은 어쩐 일인지 몰라도 그곳에 남는다. 아마도 아직도 써야할 글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글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 정말 그런가…..

내가 여기서 언니들이랑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보는 일보다 글쓰는 게 더 숭고한 일인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누가 물으면 난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아. –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 

나는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 

정윤 언니가 그랬지. 나는 이 문제로 글을 쓸 수 없다고.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몰라. 가끔씩 언니들의 마음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서 내가 언니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정윤 언니의 말을 생각해.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모른다고, 착각하지 말자고.


-> 정말 글이란게 단지 글일뿐일까, 글 뿐이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 희영의 대사였다. 희영은 그때의 정윤을 용서한다는 의미의 말을 한다. 나는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과 쓰지 못할 글에 대해 생각한다.


언니 내가 언니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요.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편지들에 답하지 않았던 거 미안해. 아주 오래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요.


-> 시간은 지나고 현재 또한 사라져버린다. 사라진 곳에는 기억이 남지만, 기억도 점점 옅어진다. 옅어진 기억은 순서가 마구 뒤섞인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많은 감정이 생겼다가 사라지겠지만 결국 남는 감정은 후회가 아닐까. 조금 더 너그러웠으면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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