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나는 독일 여행을 갔었고 그곳에서 쾰른 대성당을 보았다. 무려 약 600년간 인류가 지었던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겉은 고딕 양식으로 화려 했고 고개를 들어 한참을 봐야 할 정도로 높았다. 내부는 웅장했고 당시의 건축기술로 지었다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성당처럼 지어졌던 것 같다. 쾰른 대성당은 세계2차대전 도중에도 일부러 폭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주변의 전투로 인한 일부 파괴는 있었지만, 전쟁 이후에 복구를 통해 현재의 형태를 가질 수 있었다. 현재는 그곳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오고 가며 기념사진을 남긴다. 또한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하여도 그곳에 들어서면 인간의 존재는 한 없이 작은 느낌이 들 것이다.
여기까지 사진 없이 내가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쾰른대성당의 설명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서 남자와 맹인은 어색한 시간을 두고, 마침 티비에 나오는 대성당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대성당을 볼 수 있는 건 남자뿐, 어느 누구도 설명해 줄 사람이 없다. 오랜 시대에 걸쳐 지은 대성당의 완성을 눈으로 본 사람보다 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맹인과 그때 그 사람은 닮았다. 또한 보면서도 잘 알지 못하니 설명이 부족한 그와 맹인이라 보지 못하는 그가 어느 정도 닮았다고 볼 수 있겠다.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이 익숙하다면 자신이 봤던 것과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적당한 에피소드를 얹어서 수많은 시간을 걸쳐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중요하다. 듣는 사람의 흥미가 깨져버리는 순간, 말하기는 힘을 잃어버리고 대화는 무의미한 시간이 된다.
어렸을 때, 눈을 감고 사람 얼굴을 그렸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 얼굴이나 만화 캐릭터를 취미로 그렸다. 그러니까 눈을 감고 평소와 같이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얼굴 모양 따로 눈따로 코, 입 모두 전혀 상관없는 위치에 그려져 있었다. 이어서 바로 도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얼굴 모양 안에 눈코 입이 들어가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니까 평소에 익숙했던 것들이 어려워졌다.
<대성당>의 남자는 방금까지 봤던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한다. 익숙한 형태의 대성당의 모습을 그린다. 네모, 첨탑, 바보짓. 그리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그린다. 맹인은 눈을 감고 그리라고 한다. 남자는 무언가를 그려가기 시작한다. 눈을 감음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며 남자는 점점 새로운 느낌을 가진다.
살다 보면 낯선 것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익숙해진다. 그러니까 익숙함을 낯설게 보는 연습이 필요할 때가 온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생각될 때, 그리고 어쩌면 인생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