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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Jan 12. 2020

좋은사람이 쓴 택배상자 이야기
-까대기-

난 택배 받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마지막화까지 재밌게 봤던 멜로가체질에서 안재홍은 자신의 일을 얼마큼 좋아하는지 천우희에게 말한다.

"난 택배 받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식당에서 메뉴판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진심을 보여야 할 때, 이만큼 공감하게 만드는 표현이 더 있을까.


택배를 받는다는 것, 지구가 태양을 네 번 돌 정도로 멋진 일이다. 일부러 쇼핑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되고, 필요한 것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비교해보고, 구매 후기를 보고, 할인쿠폰을 챙기고, 혜택을 따져보고 구입하면 집으로 오는 것.

택배가 배송 중이라고 떴을 때, 집 앞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내줄 때, 귀갓길은 택배 상자를 뜯어볼 생각에 즐겁다.

택배에는 수많은 기회비용과 고민들이 담겨 있는 보물상자다.

새 옷, 먹을거리, 영양제, 부모님이 보내주는 지구상의 모든 것

지구가 두 번이나 언급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택배는 비록 작은 발걸음이지만 그 안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인류의 큰 도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예찬은 수많은 고민과 단 하나의 터치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택배는 어떻게 준비되고 집으로 오고 있을까.

수많은 택배 상자가 만드는 이 책엔 얼마나 많은 피, 땀, 눈물 그 안에 우리가 모르는 고됨이 너무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하루의 노동을 해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알바 중에서도 고되다며 일을 하다가도 도망간다는 택배 상하차의 이야기, 까대기라고 불리는 그 일에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중요하지만 정작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현실을 직접적 체험으로 고증한다.


알바를 할 때 너무 많은 사람이 일을 하고, 그만두는 반복을 보면서 휴대폰의 연락처도 쉽게 지울 수 있었던 것은 무감각해짐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부러 무감각해지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택배 상하차 일은 그 무엇보다 사람에 더 무감각해지는 현장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의 무감각함을 잊지 않고 이야기를 쓴 작가 이종철은 한 없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주문한 유산균은 오늘 도착했다. 

이제 몇 달 동안 나의 장을 지켜 줄 든든한 의약품이 그 수많은 택배 상자를 까대기 했던 상자 중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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