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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Mar 26. 2024

이토록 평범한 미래(1)

첫 번째 단편, 이토록 평범한 미래 


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1999년에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한다. –

사람들이 그런 말들에만 솔깃해서였겠지만,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예언들은 죄다 비관적이었다.


-> 화자는 이미 겪었던 과거의 비관을 통해 현재의 비관을 본다. 비관적인 말들은 대개 모호하고 불안함을 만들어서 쉽게 각인되고 부풀러진다. 누군가는 그 사실을 이용한다.


 나는 예언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이 언어여야만 한다는 게 더 흥미롭다. 어떤 예언가가 환상 속에서 미래의 뭔가를 봤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자신의 지식 수준에 맞춰 언어로 표현해야만 한다. 실제로 자신이 본 것을 보여준다면 모를까. 그걸 언어로 변환한 이상 그 진의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번역까지 된다면 왜곡은 피할 길이 없다. 결국 예언은 그 형식 때문에 빗나갈 가능성이 많은 편이다.


-> 결국 내가 본 것이 언어화 되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이야기의 기본적인 고민이 된다. 지구는 멸망한다는 예언이 있을 때 멸망한다에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 이런 생략된 부분을 채워야 하는 것이 예언가(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전에 비트겐슈타인의 책에서 그러나 당신은 실제로 눈을 보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 혜안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책을 편집하다보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안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안쪽에서만 나오죠.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라는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대화가 나온다. 정말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말은 듣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어떤 말들은 씨앗처럼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그 말을 했는 지에 따라 기억의 농도가 달라진다. 어떤 말은 쉽게 잊히는데 어떤 말은 평생을 가지고 살게 된다.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알 수 없는 미래의 불안함과 기대감이 지나고보면 이렇게 평범한 현재에 있다는 뒷걸음치는 단편이었다.





두 번째 단편, 난주의 바다 앞에서


아니에요. 서울에 사실 때는 평범한 주부였는데, 인터뷰를 보면 이 섬에 정착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게 됐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추리소설 쓰는 게 어릴 때부터의 소원이었대요.-

그럼 이 섬에 와서 꿈을 이룬 셈이네요.-

그런셈이죠.


-> 누군가의 꿈을 듣는 이야기와 섬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단편이 시작된다.


언젠가부터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아무런 의미가 없어 무자비할 수밖에 없는 자연에 맞서기 위해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정현이 평생 몰두해온 일이었다.


-> 그는 세상이 거울이기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바르게 보려고 한다. 정현은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습니다 내가 험준한 산골짜기를 건너왔기 때문에 평평한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을 원망한 적이 있었거든요. 제 안에 미움이 가득해지니까 온 세상이 다 싫어지더라구요. 그때 목련을 읽고 그 사람을 그만 원망하기로 했지요.


-> 강의를 하며 문득 불교에 대한 얘기를 한다. 타인을 향한 자신의 미운 마음이 커져 세상이 싫어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글을 읽고 그만 하기로 한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반말에 시간은 순식간에 삼십여 년 전으로 되돌아갔고, 그는 어떤 현기증마저 느꼈다.


-> 시간이 지나 멀어진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것은 그때만의 기억이 될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 버팀의 뒤에는 넘어짐이 있다. 넘어짐이 끝인 줄 알았지만 정말 넘어졌을 때 그다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또 다른 곳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세 번째 단편, 진주의 결말


이야기 속의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게 돼 있다면, 이 책을 들고 시간여행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기에 대한 답변도 책에 적혀 있었다.


-> 시간여행을 하는 이유는 안 했던 것을 하기 위함일텐데 진주의 결말에선 시간여행을 한다고 해도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두 번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이 말하는 게 분명 제 마음일 텐데도 전혀 제 마음 같지가 않았어요.


-> 범죄심리학자인 화자는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여 말하지만, 완전히 알 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한 구세주를 몰라본 도마를 질타하겠지만, 기독교에서 그는 뜻밖의 대접을 받고 있다. 도마가 없었더라면 예수의 부활은 증명받지 못했으리라. 그러니까 도마의 의심은 예수의 신성을 확인하는 도구였다. 그렇다면 나의 의심은 사람들이 흔히 진심이라고 말하는 그 마음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다.


-> 사실 하나가 있을 때 어떤 집단에겐 그것은 사실이 아니어야 하고, 어떤 집단에는 그것이 사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이번 방화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유진주는 매우 수동적인 희생자로서 살아가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아버지를 공격한 것 같아요. 방화는 그 일을 지우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 같고요. -

마지막으로 남는 가능성은 언제나 끔찍한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로서 나는 늘 끔찍하게 끝나는 이야기만을 상상한다.


-> 범죄심리학자의 최후의 가능성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말을 하기도 조심스러운 끔찍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글을 써대는 저를 보고는 이상한 애야, 라고 간단하게 이해해버렸겠지요.


-> 정작 진주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마음을 읽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네 번째 단편,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다시, 깨어날 때는 귀부터 깨어난다. 죽을 때 마지막으로 청력이 사라지듯이. 어둠 속 저 멀리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면서 그의 의식이 돌아왔다.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였다. -

자르갈은 몽골말로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말은 잊어버려도 그 뜻은 오래 기억할 테니까. 캇땀 호 가야 라는 말은 생각이 안 났는데, 그뜻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요.


-> 의미가 있는 우리말과 같은 뜻을 지닌 타국의 언어를 기억하는 의미는 그 단어만이 가진 인류애 때문일 것이다. 한글의 다행이다와 타국의 다행이다는 분명 문화적으로도, 자연적으로도 다를 것이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바얀자그에서 본 것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건 시간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부서진 돌처럼 흩어져 내린, 깊은 시간의 눈으로 보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공룡의 사체였다.


-> 자연에서 먼 자연의 시간을 체감했을 때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 밤은 한숨도 못 잤지만 잠시도 깨어 있지 않았던, 이상한 밤이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어 창밖이 밝아지는 것을 보자 그에게 묘한 감동이 찾아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절망하던 지난밤과 달리 병원에 가기보다는 잠을 좀 자면 더 바랄게 없다는 느긋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러면서 이상한 확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은 울란바토르의 한 호스텔 방에서 죽기로 돼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

분명 서로의 육체에 가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절이 두 사람에게도 있었건만, 그리고 그때는 거기 정미가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모든게 의심스러워졌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른 모든 생명들에게 그랬듯 그들의 인생에도 시간의 폭풍이 불어닥쳤고, 그렇게 그들은 겹겹이 쌓인 깊은 시간의 지층 속으로 파묻히고 있었다.


-> 지나온 시간을 아파하며 견뎌가는 밤에 오랜 먼 자연의 지층처럼 파묻혀가는 형태로 소설은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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