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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May 09. 2024

너는 무엇을 쓰고 싶니



단체카톡방에 오늘도 사람들은 글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톡방이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들어왔지만 들어온 이후 소설을 쓰지 않고 있었다. 게으름이다. 몇 가지의 아이디어를 적어본다. 누군가 죽는다. 아니 꼭 죽어야 하나? 이별을 한다. 꼭 이별이네. 남자가 주인공이니까 여자가 나온다. 남자가 나오니까 여자가 나와야 하나? 남자가 주인공인데 남자가 나오면 이야기가 한정되는 느낌이 든다. 사랑이야기를 쓰기에는 좀 그렇지. 나는 혼잣말을 계속한다. 혼잣말을 하면 할수록 아이디어 구상은 막혀만 갔다.

작곡을 하다가 작곡을 접은 사람. 기타 연주를 하다가 기타를 접은 사람. 미술을 하다가 미술을 접은 사람. 영화를 냈으나 이후 시나리오가 안 써지는 사람. 소설을 쓰고는 있으나 등단이 안 되는 사람.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둔 사람.

언젠가 친구에게 너는 무엇을 실패했냐?라고 물으면 몇몇의 친구들은 이생망이라고 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무엇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 만남은 우연하게, 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죽으면 쉽다. 대개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니까. 실명은 좀 그러니까 대문자로 S후배가 죽었대, N선배가 죽었대, Y로부터 또는 K로부터 듣는다. 이 정도로 개연성을 확보한다. 나는 현실에서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 결혼식과는 다르게 마음속 어딘가로부터 막힌 무언가를 느낄 수밖에 없는, 그래서 발걸음이 정말 무겁구나라고 느낀 그 순간들을.


더 이상 무언가 나오지 않아 산책을 한다. 최근에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는다. 무언가가 움직이는 상상을 해본다. 오늘은 류이치 사카모토다. 사카모토가 떠났다. 떠났지만 음악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가진 불멸이다. 몇 년 전 T의 장례식을 떠올렸다. 갈 사람을 모았던 W는 T와 친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W는 그런 수고로움을 기꺼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면 그 슬픔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아서 오히려 내 인간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일까, 추억은 무엇일까라고. 언젠가 가끔 듣긴 했다. 감정이 너는 있어? 기쁜지도 모르겠고, 힘든지도 모르겠고. 최대한 티를 내진 않을 뿐이야 라고 한 것 같다.

나는 장례식을 생각하고, 죽은 사람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을 생각한다. 무언가를 실패한 사람들은 마음속에 어떤 도약하기 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릎을 꿇는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다!라는 명언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쓰니까 그런 글들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실패했을까, 몇 년간 소설을 쓰고 있지만 진척이 없다. 실력이 느는지도 모르겠고, 소설수업료는 해마다 증가하고 이거 참. 


무언가를 실패한 사람이, 장례식 소식을 누군가에게 들어 장례식에서 만나 과거의 어떤 것을 회상한다. 회상이 끝나면 현재 나는 한 걸음 전진한다. 결국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합평은 대개 비슷한 의견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엔 싸우자는 건가? 싶었지만, 끝내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합평이 아니었으면 1장 정도만 읽고 버렸겠지, 그런 마음이 들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꼼꼼하게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입에서 독설을 날리고, 이해가 안 된다는 그녀의 말이 고마워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너는 그렇게 잘 써?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그것을 안다. 보는 것과 쓰는 것의 차이를. 우리는 쓰지만 많은 작품을 보면서 이것이 어떤 오류를 가졌는지 않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카페에 들렀고, 노트북을 켰다. 파격적인 것을 쓰고 싶지만, 우선 욕심보다는 잘 쓸 수 있는 것들을 쓴다. 실패를 복기하는 것. 그것을 몇 년간 쓰면서 캐릭터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을 섞어가며 테스트했다. 그렇게 만들어간 캐릭터가 몇 개인지는 모르겠다. 작품당 3~4명은 나오니까. 요즘 ai가 창작도 한다고 들었다. ai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ai에 정보를 입력한다. 이름, 나이, 가치관, 요약 시나리오 등. 결과는 10분이나 걸렸지만 Ai에 만족할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들었던 소설선생님의 말을 떠올린다. 뭐라고 했더라. 많이 쓰라고 했지. 근데 다른 건 몰라도, 문장이 좋네요라고 한 건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그 말 들으려고 글 쓰는 건 아니지만.

나는 카페를 나왔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봄보단 여름에 가까워지는 계절이 만드는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싶지만, 그런 여유를 즐기기에는 퇴근길의 사람들이 바빠 보였다. 일을 그만둔 지 1년이 지났다. 1년이 지나도록 단편소설 2편밖에 쓰지 못했다. 그것도 어딘가에 제출하기는 민망할 수준으로. 때로는 소설을 쓴다는 게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것이구나라는 걸 느끼기도 했다.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돌아서 집으로 간다. 돌아가는 길에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꿈을 잊지 마세요. 꿈은 이루어질 겁니다! 나는 마음속 응원을 하며 그를 바라봤다. 내 옆에는 어느새 딸을 잃은 한 중년이 앉아 있었다.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인 해준이었다. 해준은 딸을 잃은 이후로 아내인 희영과도 이혼한 상태였다. 소설의 마지막에도 해준은 버스킹을 들었다. 저 아시죠? 해준이 말했다. 나는 해준을 보고 네 알아요라고 말했다. 다음 소설을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거기에도 실패한 사람이 나오나요? 해준이 말했다. 나는 오늘 구상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모두 무언가를 실패한 사람들이었다. 네 또 실패한 사람들일 거예요 나는 말했다. 해준이 실패한 사람들 그만 쓰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실패를 만들어가는 악당 같은 생각이 들어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버스킹은 비긴어게인의 loststars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니 애덤리바인노래인가?라는 생각에 얼마 전 짧은 소설이었지만 주인공으로 나와 loststars를 불렀던 해윤을 떠올렸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다. 문득 해윤이 보고 싶어졌다. 


나는 해준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저기 언제 자고, 언제 밥을 먹나요? 제가 쓸 때는 그런 장면이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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