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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Jun 03. 2024

마음

1.

올해 두 번째 10장 분량의 단편을 완성했다. 4월 22일에 한 편을 쓰고, 5월 27일에 두 번째 단편 완성시켰으니 약 두 달 만에 두 편을 쓴 것이다. 그러나 올해로 보면 이제 두 편을 쓴 것이다.


영화를 보고 소설 쓰기 모임은 총 4편의 영화를 본 후 영화마다 2~3장 분량의 소설을 쓰는 과제가 있었다. 단편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약했던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모임을 위한 4편의 짧은 소설을 쓰는 동안 추가로 몇 편의 소설을 추가로 썼는데 그 과정들이 재밌었다. 달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으로, 대화를 하다가 인상 깊었던 말을 기억했다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며.


그렇게 내 경험을 마치 소설인 듯하게 쓰는데 다른 사람들의 소설에도 알고 보면 그 사람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하게 느껴졌다. 나는 모임에서 그들의 소설을 읽을 때보다 그 사람들이 겪은 경험을 말할 때 내가 살아온 걸 돌아보는데 내 경험이 비루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소설을 쓰면서 한 가지 장점은 그 일이 불운하게 느껴져도 그 일을 토대로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 최근 밈이 된 원영적 사고가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타인의 경험을 내 경험인 듯 쓸 수 있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모임을 하면서 소설을 예전부터 써왔던 사람들도 있지만 처음 소설을 쓰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을 쓰려고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나 역시 몇 년 전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주변 환경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2.

요즘 하루 일과는 주식, 독서, 게임, 영상을 반복하다가 밥을 먹고,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를 할 때는 낮 시간에 하는데 5km 정도를 달린다. 2km쯤이 가장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 지다가 3km 정도쯤에 쓰고 싶은 것이 떠오르면 그때 그것을 기억하는데, 그런 순간이 좋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훨씬 많았다.


샤워를 끝내고 다시 약간의 수분과 영양을 보충하고, 주식, 독서, 게임, 영상을 반복하다가 글은 언제 쓰지 할 때쯤에 글쓰기 전용 노트북을 연다. 그때 써왔던 메모들을 쓴 파일을 열고 한 문장을 쓰다가, 썼던 한 문장을 보다가 역시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주식, 독서, 게임, 영상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아 언제 글 쓰지 하면서 나는 또 모임에 의지해서 불성실한 내 의지를 확인하며 글 써어야지로 바뀐다.


소설 쓰는 모임에 나가면 소설 쓰는 마음에 대해서 듣게 된다. 소설 쓰는 마음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글을 쓰려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왜 읽을까도 납득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소설을 왜 쓰려고 할까라는 질문은 대체 어떤 질문일까. 이런 질문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소설을 왜 읽는가 보다 더 적은 사람이 듣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마음에 든다.


소설을 왜 쓰려고 할까. 왜 다들 소설을 쓰세요?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나는 소설을 쓰고 싶은 건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정말 소설은 후회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소설을 잘 쓴다는 말은 물론, 내 소설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그 말.


3.

올해 여러 개의 단편을 읽었다. 2024 젊은 작가상, 인생연구,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024 소설보다봄, 2023 소설 보다 겨울, 2022 현대문학상, 여자 없는 남자들, 내일의 연인들, 선릉산책. 그리고 몇 편의 소설지망생들의 소설들.


4.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그런데 재미만 있으면 될까. 그래서 작가만의 메시지가 중요하다. 작가는 어떤 작품이든 결국 한 메시지를 위해 쓴다고 한다. 경험, 무의식, 욕망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내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독자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의 경우엔 사유의 확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독자로서 소설에 거는 이상과 기대는 큰데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는 아주 작은 메시지로 작고 작은 밤양갱 같은 글을 쓰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편적인 가치인 밤양갱 같은 가치가 작은 메시지는 아니다. 어렵고 힘든 소설 속 주인공이 단편소설 한 작품에 등장하는 동안, 한 가지의 사건을 겪으며 과거에 있던 일을 떠올리고 그것을 반복하거나 또는 이겨낸다. 독자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되면 작가로서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문제는 이 것이다. 작품의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내면 촌스러워지기 때문에 의도는 숨기되, 의도로 가깝게 전개해야 한다. 여기서 독자는 그 주제를 그대로 해석하기보단 자신의 주관적 관점으로 해석하게 된다.


이것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 절망을 느낄 수도 있고 재미를 느낄 수도 있는 포인트가 된다. 전자는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이며 후자는 난 그렇게 쓴 게 아닌데 꿈보다 해몽이구나라는 것이다. 후자로 느끼는 사람이 다음 소설을 쓸 때도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할 것 같다. 물론 소설을 쓰면 쓸수록 전자로 평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다.


5.

나는 멋있는 문장을 좋아했다. 폼이 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편한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해져서 읽을수록 점점 내 편이 될 수 있는 그런 문장. 그래서 모두가 그런 좋은 문장을 있다면 좋겠다. 중요한 점은 누군가 보지 않더라도 오래오래 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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