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마크 Feb 27. 2024

미국 한국학 사서 인턴십

나에게 인턴십 목표란?

선생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마크입니다. (중략) 그런데 제가 왜 뽑힌 거예요???” (제가 행여나 매운맛 또라이면 어쩌시려고 막 뽑으신 거예요??)


내가 첫날 사서선생님께 했던 질문이다. 다른 파견기관 지원자들은 화상 면접도 보고, 영어 면접도 봤다던데, 나는 국/영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만 제출하고 별다른 면접 없이 합격 통보를 받아 이유가 궁금했다. 선생님께서는 내 이력서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딱히 와닿진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원자가 나뿐이었다고 하셨다. (이제야 합격 이유가  납득이 되는군요.)


경쟁률 1:1, 오히려 더 좋다! 간절히 원했던 인턴십에 운빨로 합격하여 10개월 간 미국 대학도서관에서 한국학 사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첫날, 사서선생님은 내 인턴십 목표를 앞으로 업무 배정에 적극 반영해 주실 요량으로 인턴십 지원 동기를 물었다. "인턴십 목표요...??"라고 되물으며 대답을 못하자, 경력 쌓기, 영어 실력 향상 등등을 예로 들며 목표나 우선순위가 있는지 다시 물어보셨다. (이럴 거면 면접을 보시지 그랬나요. 서류 프리패스로 합격의 기쁨에 취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묻지 말고 시켜주세요.)


해외 회사 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지원한 인턴십이라 합격한 순간 이미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했고, 솔직히 인턴십 목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인턴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 아닌가요? 특별히 원하는 업무가 없었기에 해외 한국학 사서의 업무를 두루두루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사서선생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수서, 이용자 교육, 래퍼런스 서비스, 도서관 행사 기획 및 준비, 컨퍼런스 참석 등 미국 주제전문사서의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고, 그 외에 한국책 목록/정리 업무를 배우며 목록사서의 일도 해 볼 수 있었다.


맛보기 식으로 체험업무들이라 단정 짓긴 어렵지만, 미국이든 한국이든 특히 1인 사서의 역할과 업무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 "사서가 이런 것도 한다고?" 싶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 해내야 했다. 대학도서관 근무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새롭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기존에 한국에서 2년 반 정도 학교도서관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업무 자체만 놓고 보면 비슷한 것이 많았다. 수서 업무를 예로 들면, 학교도서관에서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자료를 선정했다면 여기서는 한국학 프로그램의 대학생과 교수님을 서포트하는 자료를 선정하여 도서관 관종과 이용자 특성에 따라 같은 업무지만 내용과 규모가 다른 식이었다. 업무는 비슷했지만 사서직에 대한 대우와 인턴을 대하는 모습은 한국과 매우 달라 부럽고 신기했다. 내가 일했던 학교도서관만 그지 같아  계약직과 정규직을 차별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인턴도 정규직 사원처럼 모든 회의와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교과서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인턴십에 지원을 했던 게 아니다. 사서선생님이 처음에 내게 합격 이유를 솔직히 말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솔직해서는 안 될 인턴십 목표가 있었다.


이력서에 공백 없이 10개월간 신나게 놀기.


첫날부터 "일은 적당히 하고 10개월간 신나게 놀고 싶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내뱉는 순간 또라이) 이게 가장 솔직하고 현실적인 이유였다.


경력만 따지고 본다면 도서관 경력에 석사 학위도 있는 상황에서 인턴십이 경력에 플러스가 되는 요소는 아니다. 더욱이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사를 봐야 한다면 해외 인턴십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턴십을 바탕으로 해외 취업을 할 수 있는가? 아니오. 미국 비자 없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인턴십이 경력에 마이너스 요소인가? 글쎄. 인턴십이 경력에 엄청난 플러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이너스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국 주제전문사서 인턴십 경험을 답변에 잘 녹여내면 오히려 면접에 긍정적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인턴십에 열심히 임해야지, 나는 왜  생각만 했을까? 인턴이라서였다. "인턴"이라는 단어가 시사하듯이 업무를 배우는 단계로 업무 책임이 적어 오히려 좋았다. 적당히 일하고 퇴근 후 실컷 놀기에 최적이었다!

 

사회생활의 상처가 회복되기도 전에 그동안 미뤄둔 석사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더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지친 마음을 재정비하고 느긋하게 취업준비를 하는 건 내 성격이 허용하지 않았다. 성격도 그렇지만 취업 시장에서는 나이도 스펙이라 하루빨리 취업을 하는 게 맞는데, 정규직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도 인턴십에 지원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 인턴십은 합격이 관건이었다. 합격만 하면 꿈꾸던 직장에 잠깐이나마 일할 수 있고, 게다가 이력서에 공백 없이 휴식기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운 좋게 합격을 했으니 실컷 노는 게 목표였다. 심지어 예상치도 못 하게 놀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됐다. 사서들은 한 달 만근 시에 2일의 휴가가 쌓인다며, 사서선생님은 이 기준을 인턴인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겠다고 하셨다.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할 때면 개인 휴가를 붙여 써 여행을 하기도 했고, 넉넉한 휴가로 한국에서 친구와 가족이 놀러 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력서에 공백 없이 10개월간 후회 없이 적당히 일하고 열심히 놀았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연애도 했다.) 목표 달성이다!


덧붙여, 놀기만 할 작정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인턴십이 경력이 되었다. 현재 나는 인턴십을 했던 기관에 근무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서인 듯 사서 아닌 사서 같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