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 도심으로 나갔다. 내게 혼카는 아이들 없는 틈에만 주어지는 휴식이기에 가급적 가까운 곳으로 나가지만 그날은 예외였다. 목적지가 카페가 아니라 미술관이었기에 먼 거리를 소화하기로 했다.
마침 아이 수업이 늦게 마치는 날이었다. 교문을 통과하는 아이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다. 어느 날보다 기운이 넘쳤다. 그 길로 서울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첫 데이트를 나가는 아가씨마냥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였다. 전시회는 제주도에서 갔던 전이수 그림전 이후로 두 번째였다. 혼자 가는 것은 처음이었고. 전시회는 아무나 넘어설 수 없는 세계 같았다. 그림에 대한 이해가 높고 감상할 줄 아는 ‘지적인’, ‘부유한 계층’ 사람들만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혼자 전시회 관람이라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혼자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술 마시고.. 다 해봤지만 전시회는 혼자 가기에는 어딘가 벽이 높다고 해야 할까.. 물론 편견은 쉽게 무너졌다.
나는 자존감이 낮고 수시로 우울감도 느낀다. 단순히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에 그치는 것인지 우울증으로 진단이 내려질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 보이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의 늪에 자주 빠져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파악할 수 없다. 자존감이 낮아서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자존감이 낮은 건지도 알 수가 없다. 그 시작이 자라오는 과정에 있었는지, 사회생활 속에 있었는지, 결혼 후에 찾아왔는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하고, 더 우울했다. 나조차 내 마음을 몰랐으니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도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숨이 막혔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은 버거웠다. 시부모님의 과한 관심은 감옥 같았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그저 공감받고 싶었고, ‘많이 힘들구나’ 위로받고 싶을 뿐인데 마음 놓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더 혼자이길 자처했고, 외로웠다. 마음에 자주 먹구름이 꼈다.
온통 까만 세상에 홀로 있는 듯 우울함이 꽤 높은 수준에 달했을 때, 곽아람 작가의 책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을 통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만났다. 책에 여러 번 소개된 그의 그림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당시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서야 그림에 가득한 고독이 내 외로움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
피카소, 다빈치 등은 알지만 에드워드 호퍼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미국의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는 도시의 일상적 공간을 그렸는데 스냅사진 같은 구도 속에서 조용하고 비개성적인 인물들과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들을 통해 고독감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출처 : 나무위키).
어쩐지 그의 그림은 정말 고독했다. 외로움과는 다른 결이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 에드워드 호퍼는 생소한 화가였지만 그의 그림은 마음을 파고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림을 직접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마침 서울에서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니슨
수많은 그림 속에서 유독 한 그림이 나를 잡아 세웠다. 작품명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홀로 앉아 있는 인물의 뒷모습이 가슴 시리게 고독했다. 외로웠고, 아련했다. 그게 마치 나인 것만 같아 가슴이 반응했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마음이길래 밤늦은 시간에 저렇게 혼자 앉아 있을까.’
그림 속 인물이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옆에 앉아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일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날 듯 눈이 뜨거워졌는데 이상하게 입꼬리는 올라갔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말한 ‘그림의 위로’가 뭔지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느낌은 운명의 사랑을 만나 머릿속에 종이 울리듯 강렬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어 괴로웠던 외로움을 그림이 알아주는 듯싶었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말도 안 되게,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인쇄된 엽서도 구입했다.
그림 하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녔는지 내 마음의 모난 부분은 깎아 내고 거친 부분은 다듬어 동그랗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전시관을 나서는 나의 자존감은 그 전의 것과는 달랐다. 우울함도 온 데 간 데 없었다. 세상은 아름답고, 그 안에 있는 나는 단 하나뿐인 참 소중한 사람이었다.
전시관과 연결된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언제나 그랬듯 발길 가는 대로 걷다가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갔다. 무엇을 주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엉덩이 붙이고 있은 시간도 짧았다. 그럼에도 초코 시럽을 추가하고 생크림까지 듬뿍 얹은 카페모카처럼 달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니슨
그날의 내가 잊힐 때쯤 사 온 엽서를 꺼내 본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탁했던 마음에 신선한 공기가 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미술관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