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 :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와 '말 한마디에도 천 냥 빚을 갚는다'의 중간 정도
비 오는 어느 날. 오전 내내 무기력했다. 창문에 맺히는 빗물에 그 이유를 떠넘기고 싶었지만 아니다. 시어머니&남편과 나의 갈등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래서 내 맘에 호우주의보가 내렸으니 비 때문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오랜 악습인 아들 가진 위세.
'우리 엄마는 안 그래'와 '네가 오버하는 거야'의 합창. 며느리와 통화할 때는 성이 잔뜩 난 목소리지만 아들과 통화할 때는 세상 모든 병을 안고 있는 듯 달라지는 목소리. 역시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참 교육.
이 정도면 괜찮은 며느리라는 오만.
나만큼 마음 넓은 아내는 없을 거라는 자만. 끈질긴 유교 사상과 1970~1980년대 마인드. 돈 버는 남편과 집에 있는 아내. 뭐, 이런 류의 구린 콜라보 정도라고 해두겠다.
벌써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서, 그동안 여러 안 좋은 상황들을 겪으면서 시어머니와 나는 많이 변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결혼 초 전 세계의 아들 가진 위세는 다 하려는 듯한 시어머니의 기세가 많이 꺾인 것과 비례해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없이 불편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시부모님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고. 나 역시 조금 더 잘하려고, '착한 며느리' 프레임에 맞추려 부단히 노력했다. 남편도 그런 나를 알고 조금의 고마움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해든 아니든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몹시 괴로웠다. 그날 아침이 딱 그랬다. 마음이 몹시도 소란했다.
아침 먹은 것을 치우고, 빨래를 게고, 청소기를 돌리고. 내 아침이 멍청이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작정 나서 가까운 커피숍을 찾았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커피를 앞에 두고 또 멍하니 있었다. 이미 충분히 혼자인 내 외로움이 사람들의 웅성임에 희석되길 바라며.
옆 테이블 두 여성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남편 문제로 고민하는 상대를 위로하며 조언해 주는 것 같았다. 내용을 복기해보자면 대략 이랬다.
"어떤 사람이 한 남자에게 '현명한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물었대. 그랬더니 남자는 자신의 아내라고 답했다는 거야." "어머. 아내? 왜~?"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집이었나 봐.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일만 하면 땡!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이고. 여자가 엄청 힘들었겠네." "그러다가 여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갔는데 남자가 문자를 받았대. 이렇게 몸 편히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남자가 그땐 아내의 말이 너무 고마웠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되게 여우 같았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그게 현명한 것 같다고 했대." "아~~" "물론 남자가 일한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소홀한 게 있었겠지만 기분 좋은 말로 살랑이니까 남편이 그렇게 생각했겠지~? 보통은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쁘면 우악스럽게 싸우자고 달려들고 그러잖아. 근데 그렇게 하는 게 진짜 현명한 것 같아."
얘기를 듣고 있는 여성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사실, 그보다 내가 더 크게 공감했다. 마침 아침에 그런 일도 있었고. 남편은 사나웠다. 그에게 나는 어떻게 비쳤을까.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던가. 부부 사이에서는 특히 '말'에 조심해야 하는데, 부부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게 바로 현명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겠지. 물론, 일방적인 노력일 뿐이라면 '내가 호구인가'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언젠가는 상대도 알아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어쩌면 그 역시 나에게 그런 기대를 갖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남편에게 슬쩍 메시지를 보냈다. '수고해주는 덕분에 혼자 커피를 마시며 호사를 누립니다.'
카페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대화로 깨달은 현명함이란... 마음속 폭우도 조금씩 잦아진다.
에스프레소에 위스키를 섞고 크림을 올린다는 아이리쉬 커피가 생각난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하고, 살짝은 취기가 오를만한 커피가 필요한 날씨다.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그 맛이 마치 오랜 친구처럼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