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칭찬

너도 나도 자존감 만렙이 돼 보자

by 이니슨
칭찬 : 타인이 아니어도 스스로도 할 수 있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자존감이란 녀석은 어쩜 이리도 잡기 어려운지 손에 쥔 것 같다 싶으면 모래처럼 사르르 빠져나간다. 반대로 도망치고 숨는 실력은 만렙이어서 지구 반대편으로 뚫고 나갈 기세로 땅 속 깊이 파고들기도 부지기수다.

아이를 위해 나를 칭찬하라 ⓒ픽사베이


아이에게도 '자존감'은 중요한 키워드다. '아이 자존감 높이는 방법'은 부모라면 한 번쯤은 검색해 봤을 주제다. 나 역시 셀 수 없이 많이 알아봤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부모의 자존감이 아이의 자존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낮은 자존감이 연좌제처럼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면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결론.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 내 안을 들여다봐야만 했다. 내 낮은 자존감을 인정하고 그것을 찾는 여정은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한 번 열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무시무시한 것들이 튀어나올까 두려워 깊은 곳에 숨겨둔 상처 뭉텅이의 봉인을 조금씩 해제해야만 했다.


내 자존감의 원천은 '인정'이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강한데 그러지 못하니 까칠한 자존감이 멀어져만 가는 것이다. 자존감과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건 아마도 결혼 이후일 것이다. 그 전만 해도 책임감 있고 성실한 태도는 기본, 일도 못하지는 않았기에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누구의 말에 쉽게 주눅 들지 않았기에 당당했다. 그랬던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듯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을까. 가부장적인 마인드의 남편 역시 내 자존감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는 나에게 자신이 없었다. 그런 모습의 나를 사랑할 수 없었고, 내가 나일 수 없게 하는 세상을 원망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겠냐마는 높다고 생각했던 자존감은 모래성에 불과했는지 가뜩이나 타인의 눈치를 보던 나는 더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됐고, 그들의 눈에 비치는 나를 위해 안팎으로 치장하는 데 바빴다. 내면을 채우고 내 의견을 내는 것보다 그들의 구미에 맞는 나를 가꾸는 게 더 중요했다. 그것과 내 자아의 괴리감은 자존감에 쥐약이나 다름없었으니 후회를 반찬 삼아 자책으로 배를 채우는 나날이었다.


나는 칭찬을 받고 싶었다. 나에 대한 '인정'이 필요했다. 따뜻한 표정과 온화한 말투로 인정받는 것. 나는 매 순간 그것에 목말라 있었다. 수치로 환산된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가사와 육아지만 '수고한다', '잘하고 있다' 등의 인정과 응원을 원했다. 내 자존감의 원천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아이를 위해 나를 칭찬하라 ⓒ픽사베이


현인들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의 가치를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십여 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쉽게 달라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대신 조금씩 노력해 보기로 했다. 나 자신을 칭찬하는 것부터.


오늘도 밥 열심히 차린 나 칭찬해.

유독 집이 깨끗해 보이네.

애들 공부시키느라 힘들 텐데 잘하고 있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자.

가사도 육아도 맘대로 되지 않아 슬프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런 마음을 먹고 나니 아이를 향한 나의 시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 안 하니?

방이 왜 매일 이 꼴이야!

게임 좀 그만할 수 없어?

넌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내 입을 떠난 열 개의 문장 중 일곱 여덟 개는 저렇다는 것이 그제야 가슴에 맺혔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겠다고 여러 전문 자료를 탐독하면서 정작 저런 말들로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주범이었음을 깨달았다. 가끔 보이는 아이의 주눅 들어 보이는 표정은 결국 나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걸까.


나를 닮은, 그래서 더 안타깝지만 역설적이게도 짜증도 나게 하는 이 아이는 얼마나 인정을 받고 싶을까. 그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남았을까. 얼마나 많은 슬픔을 봉인해 놓았을까. 아이의 행동을 평가하고 비판하던 내 모습이 내 안의 상처와 오버랩 돼 보였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변화가 절실한 시점을 맞닥뜨린 것이다.

아이를 위해 나를 칭찬하라 ⓒ픽사베이

그렇게도 칭찬을 원했으면서 정작 나는 왜 칭찬에 인색했을까. 가만히 아이를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행위에는 아이를 향한 위로와 미안함의 감정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아이를 평가하기 전에 노력한 과정을 보기로 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강조하기로 했다. 그 모든 것이 아니더라도 아이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쉽지 않겠지만 노력하기로 했다.


그리고 타인이 아닌 나로서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나에 대한 감사일기'를 쓰기로 했다.


피곤한데도 열심히 공부한 것 칭찬해.

친구의 놀림에도 의연하게 대처한 것 대견해.

싫어하는 반찬까지 먹으려 시도한 것 응원해.

오늘도 건강히 잘 지낸 것 축하해.


인생은 예측불가의 연속이다. 여러 불리한 상황에서 무너지고 추락하지 않기 위해 자존감은 꼭 지키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커질수록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 어떤 실패나 좌절의 상황에서도 나를 지키고 일으키는 뿌리가 된다.

사십 대의 나는 이제야 무너진 내 자존감을 다시 세우려고 초석을 다진다. 천천히, 하지만 튼튼하게 자존감과 가까워지는 중이다. 나의 노력과 되찾은 자존감으로 아이의 자존감도 동반상승하길 기대하며 오늘도 나를 칭찬한다.


밥 하고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까지 잘 챙긴 나 님!
정말 칭찬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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