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날. 문득 가슴을 파고든 햇살은 하루를 이끄는 등대가 되어 날 따뜻하게 데운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쑥떡 한 봉지의 행복 ⓒ픽사베이
평소보다 부지런히 움직여 은행에 갔다. 육아로 세상과 단절돼 온 사이에 바뀐 건지, 그동안 내 기억에서 잊힌 건지 은행 문 여는 시간은 9시 30분이었고, 내가 도착한 시간은 8시 58분이었다. 문 열자마자 빨리 볼 일을 보고 돌아오려던 내 계획은 이렇게 어이없게 막을 내렸다.
근처 커피숍에서 차 한 잔을 하며 30분을 기다렸다. 간만의 차로 은행 오픈런에 실패해 내 순서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데 한 할머니가 거리에 자리를 깔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채소와 쑥덕을 늘어놓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저 쑥떡 한 봉지 사가야지.' 내 마음은 이미 창밖으로 달렸다. 기다림보다 짧은 시간에 은행 볼일을 마치고 새 신을 신고 폴짝 뛰는 듯한 설렘으로 좌판 앞에 섰다. 3000원을 내고 쑥떡 하나를 얻었다. 투명 봉지 속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쑥떡의 자태가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첫 손님이었는지 연심 감사하다는 할머니의 인사에 나 역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이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일까 싶었다.
은행 오픈 시간을 잘 알지 못했고, 그래서 오픈런을 하지 못해 하루의 계획에 다소 차질이 생긴 하루의 시작점. 좌판 할머니의 쑥떡 한 봉지는 나를 세상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돌아오는 내내 묵직한 검정 봉지는 힘차게 앞뒤로 흔들렸다.
쑥떡 한 봉지의 행복 ⓒ픽사베이
'행복은 매번 나를 빗겨간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다. 아니다. 때로는 수시로, 하루에도 여러 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를 지배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랬듯 행복은 늘 이렇게 곁에 있었나 보다. 불행하다는 프레임에 나를 가둔 사이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생각해 보면 행복은 아침부터 나를 좇고 있었다. 은행 오픈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은행에 도착했을 때 '괜찮아. 조금만 기다렸다가 다시 오픈런 도전하지, 뭐.'라는 쿨하고 긍정하는 마음이 나를 물들였고, 근처 커피숍에서 차 한 잔을 할 때는 '의도하지 않은 시간이 주는 여유도 나름 좋구나.' 싶은 마음이 반가웠다. 평소 같으면 수십 번의 한숨과 짜증이 뒤섞였을 일들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괜찮다'며 나를 응원하고 지지했던 날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등대처럼 나를 밝히며 부정의 길에서 긍정의 길로 이끌었다. 덕분에 좌판 할머니를 통해 비로소 그것들이 모두 행복이었다는 것을, 행복은 결국 내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내가 어떤 마음 먹느냐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불행이 될 수도 있다.
다 먹지 못해 냉동실에서 꽁꽁 얼린 쑥떡을 보며, 그것을 꺼내 행동시키면서 그날의 마음이 떠오른다. 덕분에 행복의 비결을 떠올리고, 또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