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수치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 싶은 날이 있다. 모든 것에 예민해져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 봐라.'라며 독기를 품는다.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들 정도면 신속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마음을 환기해야 한다. 사방이 짙은 어둠에 갇혀 있어도 다시 봄날의 햇살로 나아가야 한다.
내게는 내 정신이 나를 불행으로 이끌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그런 때다. 모든 생각이 부정적이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대로는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줄 것만 같은, 바로 그런 때.
그날의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을까. 스트레스가 차올라 폭탄처럼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똑딱똑딱, 곧 터질 거라는 경고음이 계속 울렸다. 급속 환기가 필요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새로운 카페에 가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에서 에너지를 받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좋아하는 느낌의 카페를 찾았다.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곳인데 조용하게 마음을 정리하기에 좋아 보였다.
잘 정돈돼 있는 있는 주차장부터 맘에 들었다. 반지하 카페에 들어섰을 때는 '오늘 선택 아주 탁월하다' 싶었다. 전체적으로 조용하면서도 유니크한 느낌의 카페였다. 큰 창으로 비치는 햇살은 또 얼마나 고운지. 카페를 감싸는 노래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쯤 되려나. 딱 내 세대의 취향에 맞춘 듯한 선곡이었다.
뜨거운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창 바로 앞의 자리에 앉았다. 인터넷으로 보며 점찍어둔 자리였다. 초록의 잔디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어쩜 카푸치노까지 이리 맘에 쏙 드는지. 비주얼도, 맛도 모든 것이 카푸치노의 정석이었다. '이런 게 바로 나무랄 것 없이 완벽한 선택일 것이다' 한층 들뜬 내가 어색했다. 뾰족했던 마음은 이내 동글동글 윤이 났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사람이 바로 나였다.
안타깝게도 완벽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지하이기 때문인지 장마철이기 때문인지 미세한 곰팡이 냄새가 온 신경을 자극했다. '역시, 세상에 완벽한 건 없구나'. 다행히 이미 마음 환기가 완료된 상태였기에 대수롭지 않았다.
완벽하다 여겼지만 완벽하지 않았던 카페에서 어쩌면 내 스트레스는 완벽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완벽한 아이들,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내, 완벽한 며느리, 완벽한 딸. 그 안에서 잃지 않고 완벽하고 싶은 나 자신까지. 완벽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은 늘 나늘 괴롭혔다. 더욱이 그 완벽의 기준이 문제였다. 나와 내 환경(아이 포함)을 평가하는 시선에 기준을 놓고 그들에게 책 잡힐 거리가 없길 바라며 완벽을 추구했던 내가 보였다.
나라는 사람이 완벽주의자는 아닌데 사람들의 시선에 유독 예민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뾰족 세우고 있었다. 그러니 내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외적인 완벽함은 내적인 결핍을 감추려는 가면일 수도 있다. 내 완벽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부족한 것은 덜 부족한 데서 채우면 그 뿐.
완벽을, 겉으로 드러내는 그것을 내려놔야 한다. 꽤 오랜 시간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터다. 하지만 내 안의 나를 단단히 세워야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씩 노력을 기울이는 나를 응원한다.
혼자 카페에 가다 보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이날의 교훈은 '완벽한 것은 없다'였다. 피식 웃음이 났다. 가시가 부드러워졌다. 세상 우울함과 힘듦은 다 내 것이라는 듯 잿빛이던 얼굴에도 햇살이 비쳤다.
카푸치노의 마지막 우유거품까지 말끔히 마신 후 카페를 나서는 나는 그곳에 첫걸음을 내딛던 나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