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바 오픈런하기. 혼자만의 계획을 앞두고 전날부터 설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므로 미리 교통편도 찾아본 뒤였다. 단지 핫플인 그곳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리움이 가득 쌓였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잔향을 남긴다.
남편과 두 아이가 없는 주말이었다. 남편이 지인들과 아이들만 데리고 여행을 가는, '아빠 어디 가'라고 부르는 일정이 있었던 까닭이다. 마지막까지 갈지 말지 고민하던 딸아이까지 합류한 이후 본격적인 자유부인 계획에 나섰다. 무엇을 할까 고민 끝에 정해진 것은 서울 명동의 인기 있는 에스프레소 바에 가는 것. 평일에도 대기가 길다는 후기에 오픈 시간에 맞춰, 아니 그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가 오픈과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 자유에 의한 계획이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주말에, 혼자, 아이들 걱정 없이, 버스를 타고, 가고 싶던 카페에 가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니까. 버스에 사람들이 그득 차 손잡이에 매달리다시피 나아갈지언정 우등버스를 전세 낸 것처럼 벅찼다.
눈앞에 명동성당이 펼쳐졌다. 40여 년을 살면서 성당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도, 아름답다고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그런데 명동성당보다 나를 더 가슴뛰게 한 게 있었다. 남산타워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두고 허공으로 시선을 던지니 남산타워가 반가운 얼굴로 내려다봤다.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렸다는 듯, 나는 계속 여기 있었다는 듯 우뚝. 아, 그랬지. 3년의 시간 동안 매일 저것이 내려다보는 남산자락을 오르내리곤 했었지. 까마득한 옛날 같은 여고시절에.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산 중턱에 있었다. 명동역에서 남산 방향으로 10여 분, 체감 30여 분 걸어 오르면 닿을 수 있는 곳. 사춘기 반항심에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학교를 1순위에 적었는데 하필 그곳에 덜컥 배정받을 줄이야. 예비소집일에 '뭐 이런 데 학교가 있어?'라며 투덜거림과 놀라움의 양가적인 마음으로 남산을 오르던 내가 보이는 듯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몸을 스치며 지나가는 명동 거리를 비집고 그 길로 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맑으나 흐리나 3년 내 지겹도록 오르내리던 길 위로 내 인생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소환됐다. 아련하지만 빛나는 순간순간이 점처럼 떠오르길 반복했다. 이 길을 이렇게 사뿐히 걷는 것도 처음이겠다 싶었다.
학교가 속해있는 재단에서 여고와 여중은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고 남은 건 여대와 초등학교뿐이었다. 교정을 걸으며 음악당 혹은 학교를 설립한 마펫 선교사를 기리기 위한 '마펫기념관'으로 불렀던 강당 계단에도 오르고, 운동장 스탠드에도 앉아보고 싶었는데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나를 멈춰 세웠다. 완벽한 외부인인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심장을 찔렀다. 찌릿찌릿 전기가 오르다 이내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가팔랐다. 야간자율학습 전에 즐겨 찾던 털보네 돈가스집도, 그 앞의 노래방도, 각종 참고서와 군것질거리가 가득했던 문구점도, 전국에 이런 디자인은 우리 학교뿐이라는 자긍심 가득했던 교복의 여학생들도 사라진 길 위로 남산타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웠다.
후에 SNS에 이런 이야기를 올렸더니 친구가 학창 시절에 남산을 보며 등교했다는 것을 놀라워했다. 그래, 나도 새삼 놀랐다. 지금은 일부러 찾아가는 남산타워를 그때는 제대로 올려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게, 매해 봄에 남산타워까지 걸어가던 학교의 프로그램을 그렇게 지겨워했다는 게, 이제야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한다는 게.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라고 한다. 훗날 오늘을 생각하며 그리워하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원망과 후회들조차 돌아보면 연기처럼 사라지겠지. 그리고 빈자리에 짙은 그리움이 채워질 것이다. '지겨워', '지친다', '시간이 좀 빨리 갔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수시로 입에 올리며 현재를 부정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역시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가장 값진 선물이라는 것을. '내 생에 가장 빛났던 날'로 바로 오늘을 떠올릴지도 모를 일이고. 그러니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는 대신 웃는 얼굴로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새삼 체득한다.
방학이라고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늘어놓고 떠들고 싸우는 두 아이를 향해 수많은 감정들을 토해내다 불현듯 그날이 떠올랐다. 숨을 삼키고 헤드셋을 썼다. 아이들은 마치 음악 속 배경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