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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우유의 맛

내겐 어떤 재료가 필요할까

by 이니슨
숙성 : 더 맛있는 삶을 찾아가는 과정


숙성우유를 활용하는 카페라테의 인기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재료만 살짝 달라졌을 뿐인데 놀랍게도 다른 맛이 난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떤 재료가 더해져야 더 풍부하고 깊어지고 맛있어질까.



"거기 커피 먹어봤어? 라테 정말 맛있어. 우유를 다른 거 쓰는 것 같아."

친구의 추천에 다음 날 바로 A카페를 찾았다. 카페라테가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였는데 첫 모금에서부터 눈이 번뜩 뜨였다.

이 맛은 뭐지?

보통의 카페라테보다 진하고 깊은 맛이었다. 찐득한 것 같은 게 우유의 농도가 다른가 싶었다. 평소 맛 감별을 잘하지 못해 '라테는 라테 맛이고,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 맛이지.'라고 해 친구들의 원성을 사곤 했는데 이건 확실히 다르게 평가할 수 있는 맛이었다. 알고 보니 숙성우유가 치트키였다.

소고기나 회를 숙성하면 더 연하고 맛있어진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우유까지 숙성을 한다고?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숙성우유 만드는 방법을 알아봤다. 첫 번째 방법은 우유에 생크림이나 연유를 적정 비율로 넣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우유를 저온에 보관하며 함유된 물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좋아! 나도 숙성우유 라테를 만들어 보자!!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고 그나마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인 '생크림 추가'로 숙성우유부터 만들기로 했다. 우유에 생크림을 적당량(내 감에 의존한) 넣어서 섞은 후 냉장고에 넣고 나름의 숙성 과정을 거쳤다. 20~30분 후 꺼내 맛본 우유는 확실히 좀 묵직했지만 우유의 고소하고 단 맛보다 크림의 느끼함이 더 길게 남았다. 그것으로 만든 아이스 카페라테 역시 A카페에서 맛본 것과는 달리 느끼하기만 했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섞고 얼마나 숙성시키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도 크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비록 숙성우유 제조에 실패했지만 재료에 조금만 변화를 줘도 그것이 치트키가 되어 커피 맛이 좌지우지된다는 건 아주 흥미로웠다. 커피뿐만이 아니다. 어떤 요리든 치트키가 되는 재료들이 있다. 미역국에는 참치액젓이 그렇고, 김치찌개에는 새우젓이 그렇다. 또 어묵볶음에는 굴소스가, 김치전에는 참치가 치트키가 된다. 넣지 않아도 되지만 넣었을 때 음식의 풍미가 배가 되는 것.

재료에 따라 맛이 변하는 건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어떤 재료가 얼마큼 들어갔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 우리 안을 들여다보자. 어떤 맛이 나는가.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가. 어떤 재료가 더해지면 더 풍부하고 깊은 맛이 나겠는가. 그것을 찾는 것이 각자의 목적지에 더 안전하고 빠르게 도착하는 방법일 것이다.


내 삶에는 어떤 재료들이 뒤섞여 있을지, 또 앞으로는 어떤 것들을 더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지금은 아마도 떫은맛이 날 것이다. 얼른 숙성우유 같은 재료를 만나 익은 맛을 내고 싶은데, 아직도 간절히 그것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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