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터울 초등아이를 키우는 전업엄마 A. 두 아이가 어릴 때를 떠올리며 힘들었던 기억들을 꺼내놓는다.
"남편 퇴근이 늦어서 혼자 두 애를 재웠어야 했는데 한 애는 안 자겠다고 버티고 한 애는 졸리다고 울고. 정말 미치는 줄 알았잖아."
"눈 오는 날 애가 감기로 병원에 가는데 한 애는 유모차 태우고 한 애는 걸으면서. 애가 걷다가 계속 미끄러지는데도 내가 뭘 해줄 수가 없더라고. 그때 그 애도 겨우 네 살이었는데 말이야."
그래.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그이의 마음에서 그날의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고3 딸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 B. 딸의 사춘기를 뒤돌아보며 후배맘들에게 조언한다.
"지금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사춘기 지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왜 사춘기를 '지랄발광병'이라고들 하는지 완전 알겠더라."
그래 맞아. 사춘기 자녀의 비위를 맞추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직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알 것 같은 이야기다. 눈앞에 그려지는 것도 같고.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그때는 또 얼마나 힘들까.
늘 당당하고 자기주장을 잘하던 C. 최근 부부 상담소에 다녀왔다며 어렵게 입을 뗀다.
"남편이 상담사 앞에서 갑자기 아이처럼 엉엉 우는 거야. 너무 놀랐어. 진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반성도 하고."
그래.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이 부부가 상담소에 가기까지 서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
세상 혼자 잘난 맛에 사는 것 같은 40대 외벌이 가장 D. 가족들이 걱정하는 것이 두려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에겐 아이가 둘 있는데 기본적인 생활비에 교육비까지.. 매일 상상하기도 힘든 책임감에 짓눌리며 살고 있다. 여기에 장남의 타이틀을 디폴트로 갖고 있기에 그의 어깨엔 우루사 곰 열댓 마리가 늘 매달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가족 앞에선 늘 단단한 바위 혹은 나무처럼 굳건한 모습만 보이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가족이 걱정하지 않도록.
"내가 무너지면 가족 전체가 무너지는 거니까...그런데 가족이 힘들 때 버티는 힘이 되는 것도 맞고."
그래. 대한민국에서 40대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고될까. 나는 감히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묵직해진다.
우리는 이렇게 저마다 힘든 불행의 터널을 건너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게,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 게 왜 위로가 되는 거지? 나 자신에게 느꼈던 환멸까지 보상받는 느낌이다. 이게 '불행을 통한 연대'라는 건가.
<작고 기특한 불행>에서는 불행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2년 넘게 심리 상담을 받았다는 저자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무수히 많은 도움의 말들 중 "세상 사람들은 다들 불행해요."라는 문장만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스스로가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전설적인 요괴' 따위로 느껴질 때도 있다고 하는데, 모두가 다 고통받고 있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인류애'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연대감은 어쩌면 불행을 나누는 데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나 역시 맥락은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공감'과 '응원', '희망'이라는 속성을 더 얹고 싶다.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단순히 '너도 힘들구나'는 아닐 것이다. 타인의 불행은 불행으로만 끝나지 않으니까. 진정한 위로는 그들이 악착같이 버텨온 시간들과 수시로 찾아오는 어둠을 헤치고 빛을 찾으려 애썼을 노력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다시 한 계단 올라선 대견함을 응원하며 나도 그들처럼 버티고 이겨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가 더해지면 불행은 찬란한 희망이 된다.
세상에 매번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힘들고', '그렇지 않고'가 반복되는 삶을 이어간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도 이야기하지 않던가. 소나기 없는 인생은 없다고. 그렇게 퍼부을 땐 우산을 써도 어차피 젖으니 에라 모르겠다 하며 확 맞아버리는 거라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힘들고불행하다 느끼면 그저 소나기라고 여겨보자. 싱잉인더레인을 부르며 진탕 놀다 보면 날은 개고 무지개가 뜰 것이다. 짙었던 불행도 차츰 연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 치유력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