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다면

아주 불행한 사람은 아니야

by 이니슨
불행 : 커피 한 잔 할 정도 되면 해당되지 않는 상태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지치면

마음의 여유를 잃고 한없이 뾰족해진다.

세상 모든 것에 원망을 쏟아낸 후

마지막엔 칼날이 나를 향한다.


내가 아닌 모두가 행복하다는 착각,

나만 불행하다는 망상.


구석진 곳으로 나를 몰아넣고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럴 때면

움츠러드는 나를 붙들고 밖으로 나간다.

무작정 걷는다.

해가 쨍한 날엔 해가 쨍한 대로,

비가 오는 날엔 비가 오는 대로

크게 숨을 마시고 뱉는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멍하니 있는다.

구수한 커피 한 모금 머금으면

날 선 마음도 조금씩 둥글해진다.


'그래, 이렇게 나와서 커피 마실 정도 되면 나도 완전히 불행한 건 아니야.'


그제야 생각한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해.

불행의 보편성에 대해. 그들과의 연대에 대해.


쥐고 있던 칼날도 서서히 뭉뚝해진다.


사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은 그 자체로

나를 위한 생명줄이 된다.




무너진 내게 다시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오늘도 혼자 카페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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