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책 〉
《 항복의 길 》 -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향한 카운트다운
_에번 토머스 / 까치
1.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폭탄이 투하되었다. 폭탄을 만들고 떨어뜨린 사람들도 그 폭탄의 영향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단 5초 만에 8만 명(자료마다 수치가 약간 다르다)으로 추산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후 2차 원폭피해로 2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3일 후, 8월 9일 나가사키에 2번째 폭탄이 떨어졌다. 히로시마에 비해선 피해가 적었다고 하지만, 역시 수만 명의 인명피해가 뒤따랐다. 폭탄이 떨어진 곳은 황망한 벌판으로 변해있었다.
2.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도 있지만, 그 곁 또는 뒤에서 전쟁을 멈추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전문 전기 작가로 소개되는 저자 에번 토머스는 이 책에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전쟁이 종결된 과정을, 그리고 어쩌면 끝나지 않았을지도 몰랐을 과정을 담았다. 소름끼치도록 강력한 신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일엔 심각한 심적 부담이 따른다. 군대는 단지 명령에 따를 뿐이라고 하지만, 거슬러 위로 올라가다보면 누군가 책임을 질만한 인물이 남게 마련이다. “저들을 충분히 많이 죽이면 저들은 싸움을 멈출 것이다.” 저들은 일본, 일본군을 의미한다.
3.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세 사람을 주목한다. 미국 전쟁부장관 헨리 스팀슨은 핵폭탄을 투여할 것인가? 투여한다면 시간과 장소는? 등을 꼼꼼하게 결정해야 하는 엄청난 중압감을 갖고 있다. 태평양 전략폭격 사령부 수장 칼 스파츠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신의 임무에 대해 전쟁 후에도 끝없는 양심의 가책을 짊어지고 살아야했다. 조선의 피가 흐르고 있는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는 핵폭탄이 투하되기 전부터도 항복만이 일본의 살길이라고 믿었다. 일본군내 과격우익 장교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히로히토(천황)에게 항복을 설득했다.
4.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지고도 일본 군부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더 전의가 불타올랐다. 결사항전이다. 그리고 미국이 어쩌다 핵폭탄 하나 만들었나보다 하는 안일한 마음을 갖는다. 이를 간파한 미국은 3일 만에 하나를 더 떨어뜨리고 계속 핵폭탄을 제조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의 사전에는 ‘항복’이란 단어가 없었다. 젊은 우익장교들이 주축이 된, 죽기까지 싸우겠다는 전쟁광분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히로히토는 ‘항복’이나 ‘패전’이라는 단어를 뺀 상태로 일본전역에 녹음방송을 내보낸다. “짐은 시운(時運)을 따라 견디기 어려운 것을 견디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고자 한다.” 고상한 표현을 뽑느라 애썼다.
5.
전쟁 관련 도서를 많이 접했지만, 이 책만큼 긴장감을 갖고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관련인물들이 남긴 일기, 서류, 주변인물들과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편의 대형 드라마를 제작했다. 이 책엔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1도 안 나온다.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 2기를 떨어뜨려서 전쟁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겐 광복이 언제 찾아왔을까? 그렇다고 미국을 무한 찬양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요즘 어느 편향된 역사주의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처럼, 일제항쟁기(일제강점기라는 말보다 이 단어가 좋다)때는 우리가 일본 국민이었다고? 자력이든 타력이든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다면, 그럼 우리가 아직도 일본인?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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