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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Feb 13. 2024

장수왕, 개로왕에게 도림을 보내다.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고구려를 공격하라고 부추겼다는 거 기억하시나요? 북위는 고구려가 혹시라도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문책할 것이 두려워, 백제가 협공하자는 제의를 보내온 사실을 장수왕에게 즉시 일러바쳤어요. 장수왕은 이 소식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어요.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과거 백제 근초고왕에게 고구려 고국원왕이 죽을 정도로 국력이 약했던 사실이요. 지금은 백제가 고구려의 발 앞에 엎드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고구려를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요. 다시는 고구려에 맞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반드시 만들어야 했어요. 


장수왕은 백제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고심한 결과 한강 유역을 빼앗기로 결심해요. 백제가 시작한 장소이자, 약 500년 가까이 백제를 다스린 수도를 빼앗는다면 분명 큰 부담을 줄 것이라 믿었어요. 또한 평양 인근처럼 넓은 평야와 많은 사람이 사는 한강 지역은 고구려의 국력을 향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 자명했어요. 백제만이 아니라 신라를 압박하기에도 한강은 최적의 장소였고요. 그러나 백제의 개로왕도 성을 쌓고 군대를 양성하는 등 고구려와 전쟁할 준비한 사실을 아는 만큼, 장수왕은 백제를 쉽게 공격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도림이라는 승려를 첩자로 내려보냈어요. 백제의 정보를 알아내는 동시에 거짓 정보를 제공하여 백제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 말이에요. 


승려 도림은 백제의 개로왕을 찾아가서 고구려에서 죄를 짓고 왔으니, 제발 자신을 받아달라고 부탁해요. 개로왕의 입장에서도 고구려 승려 도림이 백제로 귀순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어요. 고구려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지만, 백제가 고구려보다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인식이 빠르고 넓게 확산할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무엇보다 개로왕은 도림이 바둑을 매우 잘 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어요. 개로왕은 바둑 두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실제로도 굉장한 실력자였거든요. 여러분도 게임에서 실력이 비슷해야 더 재미있는 거 아시죠. 한 번 지면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고 더 노력하게 되잖아요. 개로왕은 실력이 비슷한 도림과 바둑을 두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바둑을 이기기 위해 도림을 자신의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게 붙들었어요. 


개로왕은 점점 도림과 바둑 두는 것에 빠져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어요. 바둑을 두며 도림과 친해질수록 그의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어버렸죠. 어느 날 도림이 개로왕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백제는 사방이 산과 바다, 그리고 강으로 둘러싸여 누구도 쉽게 공격하지 못합니다. 또한 대왕이 나라를 잘 다스려 주변 나라의 사람들도 백제의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백제의 성곽이 수리되지 않고, 백성들의 집은 강물이 범람할 때 자주 물에 잠기니 걱정이 됩니다.>


개로왕은 도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즉위 후부터 고구려에 복수하기 위해 성곽을 수리하고, 백성의 삶을 세심하게 살피던 개로왕은 백제를 걱정하는 도림에 대한 믿음이 커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성곽을 수리하고 궁궐을 지을 때 불필요하게 화려하고 크게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그로 인해 국가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백제의 재정 상태가 악화하였어요. 예를 들어 홍수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되잖아요. 오히려 백성으로선 좋은 일이죠. 그런데 둑을 너무 높고 길게 쌓다 보니, 농민들이 논에 씨를 뿌릴 시기를 놓치게 되는 거예요. 씨를 제때 뿌리지 못하니 일 년 농사를 망치게 되고, 그 원망은 개로왕을 향했죠. 또한 성곽과 궁궐을 짓느라고 병사들은 군사훈련이 아닌 토목공사에 동원되어야 했어요. 여기에 무기와 군량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백제의 군인들도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사기가 저하되어갔어요.     


개로왕은 점점 백성의 마음이 떠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그저 ‘성벽을 쌓았으니 고구려의 침입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았으니 백성들의 근심걱정이 사라졌겠지’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도림이 궁궐에서 사라지고, 북쪽에서 장수왕이 3만의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챈 개로왕은 서둘러 아들 문주를 불렀어요. 자신이 어떻게든 고구려의 병력을 맞아 싸우고 있을 테니, 아들 문주는 남쪽으로 내려가 군대를 모아오라고 지시했어요. 덧붙여 자신이 죽고 도성을 빼앗겼다는 소식이 들리면, 적당한 장소에 도읍을 정해 백제를 다시 일으켜 달라는 부탁도 남겼어요.

문주는 서둘러 신라에 가서 구원병 1만을 빌려 도성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한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개로왕이 고구려 군대에 끝까지 맞서다 아단성 아래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돼요. 문주왕은 당장이라도 북으로 올라가 복수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군대를 되돌렸어요. 아버지 개로왕의 유언에 따라 나라를 보존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거죠. 문주왕은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방어하기 좋은 웅진을 백제의 수도로 삼고, 백제 옛 수도 한성을 되찾겠다고 외쳐요.      


고구려와 백제는 한강 유역을 두고 아주 오랫동안 싸워요. 장수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자, 백제는 멸망할 때까지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요. 백제 성왕은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꿔요. 이것은 백제가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어요.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백제가 고구려보다 정통성 있는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말이에요. 그리고 신라 진흥왕과 함께 연합작전을 펼쳐 고구려 군대를 내쫓고 한강 유역을 되찾아요.


백제 성왕의 기쁨은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신라 진흥왕이 백제 성왕을 배신하거든요. 약속대로라면 신라는 한강 상류 지역인 강원도를 가져야 하는데, 막상 고구려를 내쫓고 보니 한강 하류 지역이 탐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한강 하류 지역은 지금의 경기도와 서울 지역으로 많은 사람이 거주했고, 각종 물자가 풍부했거든요. 무엇보다 중국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가능한 통로였어요. 그래서 신라 진흥왕은 백제와의 약속을 어기고 한강 유역을 차지해요. 이후 무왕과 의자왕은 백제는 한강을 되찾기 위해 신라와 싸워요.


이처럼 고구려·백제·신라는 한강 유역을 두고 치열하게 다퉈요. 그리고 이곳을 차지했을 때 전성기를 누려요. 삼국의 전성기를 이끈 백제 근초고왕, 고구려 장수왕, 신라 진흥왕 모두 한강 유역을 바탕으로 나라를 경영한 왕들이에요. 특히 신라는 한강을 차지하면서 나당동맹을 맺고 삼국통일을 하게 되죠. 그래서 삼국시대를 공부할 때 한강 유역이 어느 나라의 영토인지를 확인하면 공부하는데 조금은 수월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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