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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Nov 05. 2024

이성계는  바지사장?

이성계를 요즘 말로 바지사장으로 보는 분들도 많아요. 조선이라는 틀을 정도전이 만들었고, 이성계는 따라갔을 뿐이다라고 말이에요. 아무래도 조선 건국에 있어 이성계보다는 정도전을 더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구체적인 예로 법궁 경복궁과 종묘 전각의 이름까지도 정도전이 지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고 말입니다. 또한 정도전이 죽고 나니까 태조 이성계도 물러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연코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가장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조선이 왕정국가라는 점이에요.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권을 가진 공화국이지만, 조선은 왕이 주권을 가진 시대였어요. 이것은 누구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뜻을 거스를 힘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도전이 조선의 틀을 만든 것은 맞지만, 이것도 태조 이성계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성계가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살펴볼까요? 

우선 막강한 군사력이겠죠. 이성계에게는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사병집단인 가별초가 있어요. 정도전이 가별초를 보고는 “이 정도의 군대라면 무슨 일이든 성공시키지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할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몽골의 나하추가 침략했을 때,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가별초를 통솔하는 명장 이성계를 누가 무시할 수 있었을까요? 


두 번째는 이성계가 정도전의 뜻을 따르지 않고 과전법을 시행한 일이에요. 정도전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전제를 시행하자고 주장했어요. 정전제란 토지를 백성들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대신에 세금을 낼 토지를 공동경작 하도록 하는 제도에요. 하지만 지금처럼 토지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유통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실현되기 불가능한 제도에요. 그래서 이성계는 백성의 수에 따라 땅을 나누어주자는 정도전의 계민수전이 아닌 조준의 과전법을 채택해요. 과전법이란 권문세족의 토지대장을 모두 빼앗아 불태운 다음 나랏일을 하는 관료들의 관품에 따라 18등급으로 나누어 경기도 토지에 관한 수조권을 나눠주는 것을 말해요. 이로써 여러 명의 전주에게 토지세를 내야 했던 농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 일한 만큼 대가를 가져올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연기력이에요. 생뚱맞아 보일 수 있지만, 태조가 공양왕에게 선위 받는 과정을 살펴보면, 매우 정치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어요. 배극렴 등이 고려 왕대비의 허락을 받고 공양왕을 폐위하고 국새를 태조에게 바치려 하자 이성계는 이들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요. 배극렴이 강제로 들어와 왕위에 오르기를 권하자 이천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방문을 나서며 “제왕의 일어남은 천명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실로 덕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 감히 감당하겠는가?”라며 거절하려는 모습을 보여요. 그리고 얼마 뒤에는 “내가 수상이 되어서도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지금은 병에 걸려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경들은 마음과 힘을 합하여 덕이 적은 사람을 보좌하라,”라며 국새를 받고 왕위에 올라요.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이성계는 우직한 장군이라기보다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네 번째는 한양 천도에요. 이성계는 계룡산 아래를 조선의 새 도읍으로 정하고 궁궐 등을 지었어요. 그러던 중 하륜이 지리적 조건과 풍수지리설을 들어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자, 이성계는 도읍 건설을 중단시키고 다시 새 도읍지를 알아봐요. 이성계의 정신적 지주였던 무학대사가 서대문 안산 아래 지역인 무악을 추천하자, 정도전이 반대하며 국론이 나누어지게 돼요. 이에 이성계는 본인의 의지로 현재의 서울인 한양을 수도로 결정해요. 이런 모습에서도 이성계가 국가 운영에 있어 정도전에 따르지 않고 본인의 의사대로 결정하는 뚝심을 엿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성계는 뛰어난 무장이며 유능한 정치가라고요.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이성계는 세련되고 꼼꼼하게 국정을 이끌어가기란 어려웠을 거예요. 그 부족한 부분을 정도전이 채워주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정도전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 것을 이성계가 선택해요. 그러면 정도전은 이성계가 선택한 결정을 현실에서 재현해내는 능력을 보여주는 거죠. 기업으로 따지면 사장이 기업의 운영 방법과 윤리 등을 결정하면, 밑에 있는 간부들이 그에 맞춰 열심히 일하여 성과를 내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것을 종합해보면 이성계가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국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정도전이 죽었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자신의 국정 방향을 읽고 수행해줄 참모진이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자신을 따르던 많은 신하가 이방원에게 죽거나 또는 이방원의 편에 선 상황에서 국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무 일도 뜻대로 할 수 없는데 말이에요. 마치 고려의 마지막 공양왕처럼요. 그렇기에 이성계는 멋지게 최고 높은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온 겁니다. 자식들과 권력을 두고 싸웠을 때 이길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자칫 자신이 만들어놓은 최고의 걸작인 조선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과감히 국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거죠. 이것은 노련한 정치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성계가 정도전의 바지사장이 아닌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조선을 건국하고 운영한 국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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