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목조건축물이 많은 만큼 화재 예방을 위한 어떤 노력을 펼쳤나요?
상징물을 통한 화재 예방과 실질적인 화재 예방이 있습니다. 우선 상징물을 통한 화재 예방을 알아볼까요? 많은 분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서울을 상징하는 해치가 아닐까 싶어요. 해치의 어원을 살펴보면 ‘해님이 보낸 벼슬아치’ 줄임말이라는 말도 있고, 중국에서 쓰는 한자라는 설도 있어요. 해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불이 나거나 나쁜 일을 막아주는 상상 속 동물이죠. 특히 왕이 사는 궁궐이 화재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궐 앞에 조각해서 세워두었습니다. 해치의 몸을 살펴보면 머리에 있는 뿔은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들이받을 때 사용되고, 꼬리는 안 좋은 기운을 털어낸다고 해요. 또한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고, 겨드랑이에는 깃털이 있어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서울하면 숭례문에도 화재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어요.
예전에 남대문이라고 부르던 숭례문은 불의 기운을 가진 관악산의 기운을 막는 용도로 사용되었어요. 양녕대군이 썼다고 알려진 숭례문의 현판은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세로로 글자가 적혀있어요. 화재 진압하는 방법 중에 맞불이라는 것이 있어요. 불의 진행 방향에 있는 것을 미리 태워 큰불이 넓은 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이 맞불인데, 숭례문의 현판을 작은 불꽃의 형상처럼 꾸며 큰불이 도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맞불이라 여긴 거죠. 또한 지금은 메꾸어져 도로가 되어 볼 수는 없지만, 숭례문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어요. 이것도 불의 기운을 끌 수 있는 물을 상징하며 설치한 것이랍니다.
아이들이 궁궐에 견학 가면 꼭 보는 드므도 연관되어 있죠?
드므는 외국 사신을 맞이하거나 조회를 여는 정전처럼 중요한 전각, 네 모퉁이에 설치해 놓은 그릇을 말합니다. 청동이나 돌로 만들어진 드므는 실질적으로 물을 담아 두어 방화수로 사용했지만, 여기에도 재미있는 상징성도 담아놓았어요. 옛날에는 화재가 불의 기운을 가진 요괴 즉 화마가 일으키는 일이라고 봤어요. 아무래도 화재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 어렵고, 피해를 많이 주기 때문이겠죠. 그만큼 화마는 우리가 쳐다보기 힘들 만큼 매우 흉측하고 못생겼다고 여겼답니다. 그러니 화마도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보면 깜짝 놀라거나 보기 싫어 도망치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으로 화재를 막으려 한 것이죠.
일반 백성들은 화재를 피하기 위한 어떤 상징물을 두었나요?
전통가옥이 목조건축물인 만큼 마루의 들보에 축문인 상량문에도 화재를 막기 위한 마음을 담아놓았어요. 들보라는 것이 벽이나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중심이 되는 두 기둥을 가로질러 걸치는 나무를 말해요. 여기에 집에 불이 나지 않도록 축문을 붙여두었는데, 이때 문장 좌우에 비와 물에 관련된 용 용과 거북이 귀를 적어두었어요. 대문에는 빗장을 거는 문돌쩌귀를 거북 모양으로 장식하여 화재를 예방하고자 했고요.
예를 들어 수원 영동시장에 가면 화재를 막기 위한 거북산당을 만날 수 있어요. 경북 울진군에는 아주 오래된 사찰이 불영사가 있는데, 이곳 대웅보전 계단 옆 좌우에는 돌로 만든 거북의 머리와 앞발을 볼 수 있어요. 이것은 불영사가 있는 산이 불의 기운이 강해서 거북이의 기운으로 화재를 예방하고자 한 거죠.
이 외에도 선조들은 주기적으로 불이 날 수 있는 굴뚝이나 잘 붙는 지붕과 대문 등에 바닷물을 상징하는 간수나 소금을 뿌렸어요. 이때 “화재막이 하자. 화재막이 하자.”라고 주문을 외웠답니다. 소금이 귀한 만큼 쌀뜨물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에서는 ‘물 수’ 자를 거꾸로 붙여 집안에 물이 쏟아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화재를 막았고, 일부 지역은 종이로 만든 옷을 태웠어요. 우리 집은 모두 화재를 당했으니, 괜한 발걸음하지 말라고 화마에게 알리기도 했답니다.
마냥 기도하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실질적인 화재 예방도 알고 싶어요.
궁궐은 행랑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지면서 그 피해가 매우 커요. 예를 들어 세종 때 서울 남쪽에 난 불로 2,170가구가 불타고, 32명이 죽는 일이 벌어졌어요. 세종은 이후 화재 예방을 위한 노력을 펼치면서 이후 조선 시대 화재 예방의 틀을 만들어지게 됩니다. 우선 화재를 일으켜 재산을 약탈하거나,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려는 나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불을 낸 사람에게 엄격하게 죄를 물었어요. 특히 궁궐이나 종묘에 불을 내면 사형에 처하는 엄벌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울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살면 화재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고 피해도 커지는 만큼, 궁궐 30m 이내에는 집을 짓지 못하도록 했어요. 이를 위해 강제 철거도 했고요. 궁궐 곳곳에는 불을 끄는 데 활용할 사다리, 드므, 쇠스랑, 도끼 등을 배치해 놓았어요. 예를 들어 경복궁의 근정전은 높은 만큼 전각물에 쇠고리를 설치해 놓고, 불이 나면 이를 잡고 불을 끌 수 있도록 해요. 궁궐 안에 있는 관청인 궐내각사 주변에는 저수지를 파서 언제든 불을 끄기 위한 물을 확보해 놓았답니다.
그런데 궁궐만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궁궐 정문에 설치한 종과 종각에 있는 종을 화재가 진압될 때까지 계속 울렸어요. 문무백관들은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소집에 어서 참여하라는 연락인 동시에 백성들도 불을 끄는 데 참여하여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또한 가옥과 가옥 사이에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화장이라고 부르는 담을 설치하고, 각 지역마다 우물을 팠어요. 더불어 세종은 ‘금화도감’을 설치하여 화재 방지와 함께 이 기회를 이용해 약탈하는 도둑을 붙잡도록 했어요.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서가 됩니다.
세종은 참 여러모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만 드네요. 다른 왕은 이런 사례가 없나요?
그럼 태종이 내린 금화령을 살펴볼까요. ‘실수로 자기 집을 불태운 자는 태장 40대, 다른 집까지 불태운 자는 태장 50대, 종묘 및 궁궐까지 불태운 자는 목을 졸라매어 죽이는 교살형(絞殺刑)에 처하고, 궁전 창고의 수위나 죄인을 간수하는 관리들이 불이 일어났다고 해서 장소를 떠나는 경우에는 곤장 100대의 처벌을 내린다.’ 아마 많은 분이 이번에 일어난 안타까운 화재와 관련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2021년 소방처 통계에 따르면 1년간 3만 6천 건의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중 89.7%인 3만 2천5백 건이 사람이 부주의나 관리 소홀 등 고의성이 없이 일으킨 실화였다고 해요.
정말 우리가 조심하고 경계할 일이네요. 소방처의 역사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세종 때 설치한 금화도감이 우리나라의 최초 소방관서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발전하며 자리 잡게 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요. 경무청이 화재업무를 관장하고, 궁궐 화재를 담당하는 궁정소방대가 생기면서 근대적 의미의 소방 조직이 생깁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소방은 많은 시행착오와 발전을 거듭해 왔죠. 저는 얼마 전 2001년 홍제동 방화를 영화로 제작한 ‘소방관’을 보면서 소방관분들에게 다시 고마움을 느꼈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도 열악한 환경을 탓하기보다 시민을 위해 묵묵히 어렵고 위험한 일을 묵묵히 하시는 소방관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