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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소년 Feb 19. 2023

[직장 생존기] 사람 때문에 괴롭고 우울할 때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때론

나와 딱 맞는 사람은 없다지만, 

너무 안 맞는 사람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총 네 명의 팀장과 일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렇듯 어떤 팀장도 완벽하진 않았고(물론 나도), 나와 잘 맞거나 맞지 않는 부분들이 공존했다. 그 와중에 가장 마음 편하고 정이 가는 팀장도 있었고, 어떤 경조사로라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팀장도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사교적이고 인정 욕구가 꽤 강한 편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전교 회장도 하며 웃어른들의 이쁨을 받는 것이 좋았다. 또 직장생활 7년차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팀 선배들에게 빠릿하고 눈치가 빠르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이런 기본 특성을 가진 나도 정말 맞추기 힘든 것을 넘어 맞추기 싫어지는 팀장들이 있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작은 경험들을 공유해 비슷한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만 외롭게 고통받는 게 아니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고, 같이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보자는 용기를 전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이 위로와 용기는 시간이 지나 또 지금 힘든 나에게 건내고 싶은 말들이기도 하다.



아무리 뛰어나고 멋있어도

당신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내가 신입으로 입사하고 만난 내 인생 첫 팀장님. 인사팀의 말로는 듣자하니 옆 경쟁회사에서 능력자로 소문이 자자하고, 우리 회사에서 거액을 제안하고 스카웃 되어 오신 분이었다. 기존에 팀장 자리를 맡아 보신적은 없으나 올해 팀장으로 오시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팀장님과 함께 일해보고 싶어서 경쟁회사에 계시다 퇴사를 결심하고 우리 팀에 합류하신 경력직 선배도 있었다. 즉, 우리 팀은 신임 팀장과 외부에서 오신 경력 선배들, 그리고 신입사원인 나로 이루어진 신생 팀이었다.


첫 팀장의 장점은 명확했다. 업무 능력이 엄청 출중했다. 우리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전략을 항상 고민해야 하는 전략 팀이었는데, 이 분은 어떻게 이렇게 아는 것도 많고 늘 신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항상 놀라웠다. 연차가 꽤 쌓인 지금에서 되돌아봐도 이 분은 정말 천재 같았다. 열정과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던 나는 능력있는 팀장을 금새 좋아하고 동경하게 되었다. 게다가 업무 스타일에 고집이 있기는 하셨지만, 막내와 인턴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시지도 않고 장난기도 많은 좋은 분이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한 부분은 이 팀장이 엄청난 워커홀릭이었단 사실이다. 회사 업무량이 객관적으로 많기도 했지만, 아마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신입인 나는 그 당시 이런 생각을 못 했다. 이제야 조금 추측해볼 뿐)

하지만 이 때문에 정말 야근을 숨 쉬듯이 했다. 야근 택시비가 나오는 밤 열한 시를 넘기는 것은 기본,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일도 잦았다. 주말 출근도 마치 종교 행사마냥 했다. 일요일 오전에 늦잠을 자고 오후 한 시에 회사로 출근, 밤 열한 시를 넘겨 퇴근하고 다음날 월요일 아침 정시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생명의 불빛 회사 안마의자. 가끔 졸지 않았으면 쓰러졌을 것이다


어느 날은 야근 택시비를 올렸는데 재무팀에서 연락이 왔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고. '그럴리가 없는데?' 하며 살펴보니 전날 야근을 하고 자정을 넘겨 새벽에 퇴근해 다시 아침에 출근, 그 날도 밤 열한시를 넘겨 야근 택시를 탔던 날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카드 승인 내역은 같은 날짜에 야근 택시비가 두 개씩 올라왔으니 내가 잘못 올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나는 헛 웃음이 나고 서러워졌다. "다른 팀은 이 정도까지는 야근이 없나 보구나. 재무팀도 이런 일은 본 적이 없었구나" 하고. 사람은 비교를 통해서는 불만족하기 쉽다 했나. 나는 만성 피로를 달고 살며 웃음과 여유를 잃어갔다. 항상 배달 음식과 식당 음식을 먹으니 뱃살이 나오는데 얼굴은 어두워지고 볼이 야위어가는 기이한 신체 변화까지 일어났다.


이 팀장과는 갑작스런 조직 개편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같이 보낸 시간이 물리적으로 많아서인지, 내가 속했던 첫 팀이어서였는지 많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팀을 떠나고, 나는 2년 동안 제대로 못 만났던 친구라는 존재들을 평일 저녁에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짜 세상은 회사 밖에 있었다는 것을.




최악의 팀장?

팀원을 불안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팀장


두 번째 팀장은 내 인생 최악의 팀장이었다. 이 분은 팀장을 맡은 지 3년 정도 되셨던 분이었고, 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를 졸업하셨던, 공부머리가 좋으셨던 분이셨다. 쉽게 예상 가능하듯이 매우 논리적이고, 효율화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이 분의 장점은 자신이 원하는 기준이 명확했으며,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다. 따라서 야근을 야근을 극도로 싫어하고 퇴근 후 자신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말자는 주의. 바로 앞 첫 팀에서 야근에 신물이 났던 나는 이런 점들이 너무 반갑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비극은 위 장점을 빼면 모든 것이 나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감정기복이 심해 팀원들에게 자주 짜증을 냈다. 그리고 짜증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옆 팀의 업무 요청에도 본인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짜증을 퍼부었고, 본인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가끔 상무에게도 큰 소리를 쳤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프라이드가 너무 커 앞서 일의 결과를 속단하고 강압적인 업무지시를 내릴 때가 많았다. 추후 본인의 주장이 틀렸음이 밝혀져도 "음~ 아니네?" 하고 대수롭지 않은 척을 했다. 반면 자신의 팀원들이 작은 실수를 하면 용서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팀장을 나는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본인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이 되지 말자고 끊임없이 다짐했다.


그 팀장의 본질을 꿰뚫는 신형철 평론가의 글



그녀의 강압적이고 거친 말들과 예측 불허의 감정 표출에 나는 회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힘겨웠다. 집중해서 업무를 해야하는데 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되고 불안했다. 그리고 팀장과 나 사이에 있던 선배는 조금 독특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하루에 한 마디도 안하고 혼자 일을 하고, 나에게 어떤 것도 가르쳐주거나 공유하지 않고 헤드폰을 낀 채 자신의 일만 했다. 팀장이 팀원 모두에게 해오라는 일도 내 의견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사람이었고, 그 결과물을 본 팀장은 더욱 격분했다. 그 선배는 시간이 갈 수록 팀장과 더 소통하지 않으려 했고, 더 나아가 내가 팀장에게 자신의 결과물을 보고하도록 떠밀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옆 팀에서 내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퇴근하고 침대에 누우면 가슴이 답답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아침이 밝는게 너무 두려웠다.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가는 한 발 한 발이 너무 무거워 잘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 팀에 3개월 씩 일했던 인턴 친구 총 네 명은 하나같이 마지막 날 나에게 편지를 남겼다. "인턴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선배 덕분에 그나마 다닐 수 있었다, 선배님도 빨리 탈출하시길 바란다"고.


어느 순간 무작정 참는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팀장에게 면담 신청도 해 보았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 밤, A4용지 4장에 우리 팀의 업무가 돌아가는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내가 잘 하고 있는 점과 보완이 필요한 점 등을 정리했다. 그리고 구조 및 상황적으로 힘듦을 느끼는 부분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여드렸다. 내가 결코 유별나고 충동적인 것이 아닌, 우리 팀의 발전을 위해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을 담은 이성적인 팀장 맞춤형 호소라고 생각했다. 팀장은 평소 고분고분하던 내가 출근하자마자 면담을 요청하니 놀라며 해결 방안을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니 그 오후부터 평상시와 똑같이 짜증을 표출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사내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총 여섯번의 심리 상담을 진행했다. 초반 상담 선생님은 이런 저런 설문지로 나의 마음 상태를 측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두세번째 세션부터 몇몇 기법들을 사용해 볼 것을 추천해줬다. 그 중 기억나는 하나의 기법은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나'자신을 주어로 사용하는 아이(i) 메시지를 활용해 힘든 점을 털어놔보라" 는 것이었다.


야근을 안 하는 대신 심리상담을 하게 되었던 날들


사람이 너무 위축되면 두려움이 몸에 배인다고 하지 않나. 나는 팀장에게 나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 너무 겁이 났다. 하지만 용기를 내 몇 번 배운 대로 시도해봤다. "팀장님 제발 그렇게 감정적으로 얘기하지 좀 마세요" 가 아닌, "저(i)는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라고 말하라는 그 기법을. 하지만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건 그녀의 대답 한 마디 뿐이다 

"내가 뭐라고 하든, 너가 그걸 마음에 담지 않으면 될 거 아니냐"

이 말을 상담 선생님에게 전했더니 돌아온 대답. "진짜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할 분은 위에 두 분이네요." 사실 심리상담이 나의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나는 이 말을 듣고 결심할 용기를 얻었다. 팀 이동 신청을 해야겠다는 용기. 나도 모르는 새 아이 메시지가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 저(i)는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는 체념 비슷한 것을 느껴요."


그렇게 결심한 나는 인사팀을 찾아가고, 상무도 찾아갔다. 그 바람에 몇 달간은 더 마음이 심란했다. 이들은 나를 구슬리고 세뇌하려 했다. 내가 팀장을 따로 불러다 혼낼테니 조금 더 버텨봐라(미친 거 아닌가?), 너는 그렇다고 다 잘한 줄 아냐, 다른 팀에 자리가 나야 보내줄테니 버텨라 등등. 하지만 다행이 평소 나를 좋게 봐주셨던 다른 팀에 공석이 생겨 내가 와 주기를 희망해주셨고, 나는 상무의 마지막 협박을 들으며 일 년만에 팀을 옮기게 된다.


"너 새 팀으로 가도 지금 팀장이랑 얼굴 보고 일해야 할 텐데, 일 할 수 있겠냐?"

"네, 오히려 좋죠. 이 분은 자기 팀원한테는 엄하고 다른 팀 사람에게는 그나마 친절하시거든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세 번째 팀으로 옮기고 나는 오랜만에 회사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팀을 옮긴지 한달 만에 너무 놀란 것은,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홀가분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내가 떠나고 빈 자리에 들어오신 경력직, 나이도 경력도 나보다 많은 다른 회사의 에이스셨던 분이 나의 두 번째 팀장과 일한 지 두 달 만에 공황장애를 얻고 바로 퇴사하셨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분이 퇴사하기 전, 우연한 계기로 그 분과 회의실에서 만나 서로 모든 전말을 공유했다. 그리고 시커먼 남자 둘이서 손을 꼭 붙잡고 서로에게 거듭 이야기했다.


"제가 이상한 게 아니죠? 팀장도, 상무도, 인사팀도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더라구요"

"어떻게 들릴 진 모르겠는데, 덕분에 제가 이상한게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됐어요. 고마워요"


보통 사람이 두 달만 있어도 마음의 병이 생기는 환경을 일 년 동안이나 버텨낸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그리고 미안하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무조건 버티고 참는 것이 정답은 아닐 때가 있다. 이 경험 이후, 헝가리 속담이면서 어떤 일본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 이 문구를 나는 종종 되뇌인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2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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