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딴따라 Sep 24. 2022

길은 어디로든 난다.

걷다보면 알게된다.

여행은 생을 감사하게 한다.

보잘것없는 생각과 한참 진을 빼며 씨름하다 무심히 하늘빛을 보고선 입이 다물어졌다. 억울하다며 내가 맞지 않냐고 따지려던 마음은 광활한 풍경 앞에서 속수무책 무장해제다.




걷기를 좋아한 때가 언제부터였나 생각하니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멀미가 체질인 나는 덥거나 습한 날 혹은 흐리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영락없이 얼굴이 노래지곤 했다. 버스 특유의 배기가스 냄새와 환기되지 않은 퀴퀴한 공기가 사람 냄새와 섞여 토악질이 올라왔다. 결국 몇 정거장을 못 가 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걷는 일이 많아졌다.

 

맑은 날은 쨍한 하늘이 좋았다. 선선한 날은 볼을 스치는 바람의 간지러움이 좋았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길은 양평대교 위를 지나 철물점이 즐비한 골목길의 용접 불꽃쇼를 몇 차례 지나쳐 큰 사거리를 두 번 건너야 했다. 늘 보는 가게와 익숙한 옷차림의 주인은 이웃처럼 친근하다. 인파로 복잡한 영등포 로터리 지하도로 들어서면 현란한 옷가게들이 찬란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양평대교 위의 허공과 땅 위의 지상 세계, 지하도를 타고 지하 세계까지 이어져 어디든 사람이 세상이라고 말해주었다.     


걷는다는 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일,
세상이라는 무대를 두고 마음을 다지는 일이다.
     자신의 마음 밭에 제 발자국으로 길을 내는 일이다.      



자연은 삶의 굴뚝이다. 천연 굴뚝 위로 부질없는 생각들이 날아가 구름 속에 섞인다. 자연 앞에선 무얼 하지

않아도 좋다. 무표정한 얼굴이면 어떠랴.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편안하다. 불과 어제까지 아우성치며 살던 날을 잠시 멈췄으니 족하다.     



나는 뭘 저장하며 살았나.

'사랑이 뭐니. 인생이 뭐니.'

오래된 질문에 정답은 없다.

'삶, 그게 어찌 될지 어떻게 아니.'

그러면서 참 열심히 산다. 숨차게 산다. 뭔지 모르는 인생이라면서 정복하듯이 산다.


상념을 멈추기 위해 자연을 걷는다. 마음이 복잡할 때 자연을 맞닥뜨린다. 바람을 맞고 풀 냄새에 젖은 몸으로 흙의 감촉을 느끼면 어느새 내 속의 불길이 사그라든다.  

'아. 좋다.'

자연 앞에선 모두가 바보다. 감탄하고 웃는 것 말고 할 게 없다. 자연 앞에선 철들지 말아야지. 이대로 천진한 바보로 친해져야지.


걷다가 깨달음 하나 얻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찮은 불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