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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Feb 15. 2023

착한 빌런은 없다.

통증에서 탈출하는 방법

"잘 지내?"

간단한 안부인데 뜸이 든다. 수화기너머의 상대는 당혹스럽다. 남은 아니지만 속의 말을 틀만큼 깊지 않은 딱 그만큼의 '아는 사이'  오랜만의 안부는 어색하다. 상대도 나처럼 편치 않아 사소로운 안부를 묻지 않았을 터. 살면서 힘쓸 일은 우연히 만나도 괜찮은, 성가신 존재가 되지 않는 일이다.


어떤 시간은 화석이 된다.

상처가 아니라 상처의 통증이 두렵다.  이가 덜덜 떨리도록 열이 나고 온몸의 진액이 땀으로 쏟아져 몇 벌의 옷을 적시고서야 생채기에 딱지가 앉는다. 지독히 무겁고 생생한 어느 날이 상대에겐 먼지처럼 하찮거나, '더 글로리'의 가해자 박연진이 '내가 고등학교 때 어떻게 했었지?' 라며 실소하듯 어떤 시간은 한 사람에게만 화석이 된다. 화석이 된 시간엔 주인공도 매몰되어 있다.


착한 빌런은 없다.

'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언행과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이다.


"그 사람 때문에 일이 되지가 않아. 말도 안 통하고 툭하면 사람들과 부딪치니 분위기도 엉망이야.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싶어. 생각은 완전 4차원인데, 그래도 모 사람은 착해."


무능, 불통 또는 게으름으로 동료불편하게 하는데 악의가 없으니 착하다는 식이다. 바른 인품과 몸가짐, 지성을 가진 '착한' 사람을 완전체 격인 사람과 다. 뒷담화 뒤에 남은 인간적인 후회와 미안함, 후일에 자신의 말이 돌고 돌아 어찌 될지 모를 불안 때문에 '그래도'라는 접속사로 말을 바꾼다. 


정확히 말 남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는 빌런은 말 그대로 빌런일 뿐이다. 자신이 낸 구멍을 옆 사람이 메꾸는  당연시하는 심보나 그런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는 무지도 죄이다. 범죄를 짓지 않았으니 나쁘지 않다 고로 착하다는 식의 논리는 궤변이다.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계속 피해를 안기는 하자에 맞는 양형이 있을까. 정상과 비정상 사이 경계선에 있는 빌런을 상대할 수 있는 영웅이 아니라면 그들과 거리 두기  해야 한다.



'이해'는 늘 일방통행이다.

이해를 강요당할 때 마음이 늙는다. 싫은 내색을 하면 속 좁아 보일까 싶고, 입 안에 맴돌던 쓴소리를 삼키다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혀를 찬다. 남의 이해 따위 상관없다며 제 기준으로 사는 이의 세상은 '나' 그리고 나를 뺀 나머지일 이다. 내심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왜 나만 이해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든다. 애당초 모질지 못한 성정이거나 다 이해하려는 과욕이 아니면 지는 게 미덕이라고 세뇌된 교육탓이다.


입도 뻥긋 못하는 자신을 채근하지 말자. 그냥 자신의 마음 그릇보다 넘치는 일이 생겼을 뿐이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신의 예민함을 닮았다고 여기자. 공감은 신의 속성이다. 상대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는 능력치가 다른 사람보다 높은 당신은 누구보다 신과 가깝다.


이해는 상대의 허락을 구하지 않 일방적인 몰입이다. 힘을 가진 무지는 폭력이지만 공감은 세상의 허다한 일을 덮는다. 다만 타인에겐 너그러우자신에겐 가혹한 혹은 반대로 차고 넘치는 자기애를 휘두를 때 공감은 아집으로 변한다. 상대를 어떻게든 이해하려다 한계에 부딪치는 일은  당연하다. 아는 만큼만 이해하는 사람의 머리 정해져 있다.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가 없다. 히려 무관심이나 방관자에 비하면 실천가라고 자위해도 좋다.

 

용량 초과로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슴을 데우는 일이 공감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감은 일방통행이다.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는 대가성이 없다. 수익 하나 없이 손해 막심해 보이지만 세상은 이런 일방통행 덕에 질서가 유지된다.


내는 사람에 대하라거나 슬픈 사람에게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 둥 마음 상했는데 네가 틀렸다며 충고를 하는 사람과는 연을 끊는 게 좋다. 너나없이 파이팅을 외치는 세상움츠린 사람을 쉽게 실패자로 몬다. 마음이 폭력을 당했을 때, "잠깐만요! 지금 시간이 필요해요."  작전 타임을 요구해야 한다.


좋든 싫든 우린 접촉하며 산다. 최선을 다한 마음이면 - 그러니까 죽을힘을 다하라는 말이 아닌 -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며 상을  날이 온다. 자신의 지난 시간을 흐뭇하게 감상할 날을 기대한다면 오늘 당신이 겪는 통증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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