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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파파 May 16. 2024

002 인간실격(다자이오사무 저)

일본의 위대한 거장으로 추앙받는 다자이 오사무의 걸작으로, 무려 5번에 걸친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불행했던 작가의 삶을 투영한 자전소설이다. 책의 내용을 서술하기 전에 무려 5번이나 자살 시도를 할 정도로 우울했던 작가의 삶을 간략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세기 초 메이지유신 이후 고리대금으로 부를 축적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권위적이던 가정 분위기에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는 어려서부터 상당한 중압감 속 살아왔다. 또한 후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빠져 좌익의 활동을 한 그는 갑자기 부를 축적한 자신의 집안에 대한 혐오감도 동시에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혐오에 대한 반항심 때문인지 집안의 기대에 어긋나는 결혼을 결심한다. 한 게이샤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결심하지만, 권위적인 가풍이었던 만큼 가족의 반대가 심했기에 결국 가족과의 연을 끊고 그녀와 혼인을 맺는다.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서며 존경하는 스승을 만난다. 하지만 후에 아내와 스승 둘 모두에게 배신을 당하며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어릴 적 수재였던 것과는 다르게 작가의 세계에서는 쉽사리 인정받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에 스스로 자괴감에도 빠졌다.

이런 일련의 시련과 압박, 배신, 자책 등으로 많은 정신적 타격을 입은 그는 수차례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살며 집필을 이어간다. 일본의 전후 암담한 시대에 자신의 삶을 닮은 허무주의, 퇴폐주의적 소설을 시작으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1948년 향년 39세에 역작으로 평가받는 인간실격의 발표 후 평생에 그를 괴롭힌 자기 파멸적 성향에 다시 굴복하여 마지막 자살 시도를 성공하며 짧은 생을 마감한다.


소설가 장강명은 <책, 이게 뭐라고>에서 인간실격을 쓴 다자이 오사무의 성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요조를 빗대어 오사무를 생각해 보면 그는 얼마나 나약하고 자기 연민에 가득한 사람이었는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자신의 치부를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낸다는 것은 어지간한 결단이 아니면 안 되기에 나름의 단단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 동의하면서도 이런 생각도 든다. 소설이라는 매체를 대나무 숲 삼아 자신의 아픔을 부르짖고 털어내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오사무는 정신적 고통의 벼랑 끝에 서있던 게 아닐까.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기에 우리는 그의 진심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대한 설왕설래와 자신들 만의 해석이 이어진다.


작가로서 성공한 역작을 남겼는지 몰라도 한 개인으로서 이만큼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삶을 산 작가가, 자신의 불행한 경험을 거의 그대로 투영하여 요조라는 주인공을 탄생시켜 쓴 소설이 바로 인간실격이다. 소설의 구성은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서문과 후기라는 소제목으로 시작과 끝은 주인공 요조의 수기를 읽는 제3자의 서술이다. 그는 요조라는 인물을 모른다. 요조가 단골이었던 주점의 주인으로부터 소설의 소재로 삼을 것이 없을까 하던 중 그 수기를 전달받았다. 서문과 후기의 중간에 3편의 수기에 걸쳐 1인칭 관점으로 요조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부끄러움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서문 후 본격적인 요조의 수기에 등장하는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이 문장이 유명세를 띈 이유는 바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함축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세 개의 수기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작가는 철저히 자기반성적이며 자기혐오적인 모습을 견지한다. 자신의 모든 행동은 철저히 계산되고 거짓으로 포장되었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반사회적인 모습 때문에 자신을 인간답지 못한 존재라 치부한다. 불행한 삶의 원인을 인간으로서 실격인 자신에게 오롯이 있다고 단정한다.

그래서 그는 자꾸만 불행해진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남들이 알아채지 않을지, 그런 모습이 발각되어 다른 사람이 본인을 해치지 않을지 불안해하며 타인과 깊은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대표적인 공황장애, 조현병의 증상이라 여겨지는 모습을 요조는 자신의 태생적 문제라 치부하며 자학한다.

그런 그는 성인이 되며, 술과 여자, 더 나아가서는 약까지 빠져든다. 쾌락적 향락에 빠진 사람들의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 모습 속에 인간으로서 실격인 자신을 감출 수 있다고 믿었을까. 그는 잘못 들어선 쾌락의 늪에서 처음으로 안정을 느끼며 계속해서 침전해 간다. 엄격했던 가족과 연을 끊고 근근이 살아가지만, 권위적이고 무서웠던 부친의 사망 소식에 그는 어딘지 모를 허무함을 느끼며 십수년 만에 고향으로 요양을 위해 돌아가는 모습으로 그의 수기는 끝마친다.


자조 섞인 요조의 서술은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인간적 결함이 있는 본인으로 치부하지만 실상 그는 피해자였다. 그는 어릴 적 집안 유모들로부터 강간을 당하며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엄격한 부모님께 그 사건을 말하지도 못하며, 정신적 충격으로 타인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가족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중압감은 그의 정신적 문제를 심화시킨다. 성인이 돼서도 타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을 타락시키고 이용하는 친구 호리키에게 간단한 거절 한 마디 못한다. 넙치와 호리키의 바보, 등신 취급에도 화 한번 내지 못한다. 심지어 거래처 사람에게 화를 당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서도 어떠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


“요조는 굉장히 순수하고 재치가 넘쳤는데,.... 하느님처럼 선한 아이였어요.”


요조를 알던 주점 마담의 씁쓸한 대사이다. 과연 선천적 비인간성에 휩싸인 이가 타인에게 완벽한 선을 연기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말이 널리 퍼질 정도로 외부충격에 의한 정신질환을 하나의 질병으로 취급하며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근대 사회에서는, 아니 불과 십수 년 전 만 해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당연했다. 그렇기에 주인공 요조 역시 선한 성정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어릴 적 사건의 트라우마와 중압감으로 마음의 길을 잃고 점점 타락했고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채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결함으로 치부해 버린, 각박하고 무질서한 시대에 가스라이팅 당한 피해자인 것이다.


잘못 끼운 단추는 다시 맞춰야 옷을 바로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모른 채 혹은 무시한 채 단추를 채워가면 결국 옷을 비뚤게 입게 된다. 유년기 잘못 채운 단추를 외면(당)한 채 살아온 요조라는 인물의 타락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들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퇴폐적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본 전후의 혼란스럽고 허무주의적인 시대 상황을 대변하고, 유약한 인간이 외부 충격에 의한 자기 파멸로 이어지는 과정과 심리의 적나라한 묘사가 시간이 흘러도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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