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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May 01. 2023

방송작가가 알려주는 맛 표현의 교과서 <6시 내고향>


수학에 정석이 있다면, 방송작가의 정석은 ‘6시 내고향’이다. 지각변동이 그 어느 곳보다 잦은 방송가에서 1991년부터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후배 혹은 방송작가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 한결같이 추천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6시 내고향>은 스튜디오와 VCR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어서 두 장르를 모루 접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보통 이런 프로그램은 3~4명의 서브 작가들이 VCR을 한 코너씩 담당하고 메인 작가가 스튜디오 대본을 쓴다. 스튜디오 대본은 스튜디오에서 엠씨와 리포터 등이 주고받는 대화를 쓴다. VCR은 휴먼, 집 소개, 맛집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데 보통 10분 내외의 분량이기에 구성의 기본기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 (방송작가들은 처음에는 예고를 쓰고 5~7분, 10분, 20분, 60분물까지 연차가 올라갈수록 방송 분량을 늘려간다.) <6시 내고향>같은 종합 구성물 프로그램에서 7~10분 내외 VCR은 막내작가에서 서브작가로 입봉 할 때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도 난이도가 있는데 보통 처음 가장 많이 맡게되는 코너는 음식이다. 맛집이나 농가를 리포터가 직접 찾아가서 맛있게 먹고, 으레 그렇듯 이 음식이 신체 어디에 좋은지를 설명하는 컨셉이기에 구성이 어렵지 않다. 비단 <6시 내고향> 뿐만 아니라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방송가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장르일 것이다. 안 먹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더욱이 한국인은 음식을 매우 사랑한다. 우리나라만큼 먹방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맛집 프로그램은 어떻게 제작할까?



나는 비슷한 류의 종합 구성 프로그램으로 SBS<생방송 투데이>와 MBC <고향이 좋다>에서 일한 적이 있다. 방송국에서 음식 프로그램은 어떻게 다룰까. 많은 이들이 짐작하다시피 맛집의 경우 협찬일 가능성이 높다. 유튜브, OTP 등의 등장으로 방송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협찬 비율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진정한 장인 정신이 깃든 곳은 방송을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명성이 자자한 유명 맛집을 제외하고, <6시 내고향>, <생방송투데이>, <생생정보통> 등과 같은 매체를 통해 소개가 되면 실제로 식당 수익이 오른다고 하니 업주 입장에서는 홍보를 안 할 수도 없단다. 물론 방송국에서도 협찬이 들어온다고 무조건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업계 용어로 ‘그림이 나와야’ 제작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소개되지 않은 새로움이 있는지 혹은 방송으로 다룰 만한 개인 스토리가 있는지 등의 컨셉이 정해지면 어떻게 하면 좀 더 맛깔스럽게 재미있게 음식을 소개할까 고민한다. 어차피 할 거 최대한 협찬처럼 보이지 않도록 잘 구성하는 것도 방송작가의 능력이다.


우선 음식 표현은 주제가 되는 메뉴, 혹은 식재료를 가지고 치는 말장난이 많다.




참나, 참나물이 참나, 맛있네 참나!
맛도 모양도 가지가지 팔방미인 가지가 주렁주렁 열렸어요~
곰취나물에 에취! 취해 버렸어~!



한 번 들으면 풋- 하고 웃어넘길 맛 표현이 대다수다. 최근에는 맛 표현이 자막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면서 어떻게 하면 식상하지 않을까에 대한 고심이 더욱 깊어졌다. 자막과 더불어 내레이션의 경우 템포도 중요하다. 다큐멘터리와 달리 약간 빠른 느낌으로 휘리릭- 음식의 맛깔남을 표현해야 한다. 보통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음식 내레이션을 쓴다.



#고등어조림

NA// 첫 번째 주자는 방울토마토고등어조림! 무를 자작하게 익힌 다음,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낸 고등어와

고추장, 간장, 마늘, 등을

섞어 만든 양념장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끓이고요.



#토마토 넣고

NA// 마지막으로 알록달록 방울토마토를 넣고

바글바글 한 번 더 끓여주면,


#뚜껑 열고

방울방울~토마토고등어조림 완성!



#방울토마토홍합찜

 NA// 이번엔 방울토마토 홍합찜입니다.

마늘을 기름에 달달~ 볶다가,

다진 양파와 고추를 슝슝 넣고요.

방울토마토, 소금, 설탕을 섞어 만든

특제 소스를 넣습니다.

다음으로 신선한 홍합을 우두두두~ 투척!!



맛표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방송작가가 아니더라도 개인 SNS를 위해 맛을 맛깔나게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런 맛표현은 카피캣 정신을 발휘해 잘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방법이다. 대표적인 연예인으로 이영자 씨가 있다. 우선은 맛에 진심인 분이기 때문에 표현 역시 진심이다. 뭐든지 경험이 중요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많이 먹어 본 사람이 표현도 다양하다. 이영자 씨는 윤기가 좔좔좔, 낙지가 펄떡펄떡 등 의성어, 의태어 등의 수식어를 찰지게 잘 붙인다. 듣다보면 나는 먹어보지 못한 음식인데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성시경 씨 역시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먹방계의 신흥강자로 등극했다. 특히 묘사에 탁월한데, 음식과 관계되지 않은 것들을 가져와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맛있다’가 아니라 ‘여자친구보다 지금은 더 좋아.’ 랄지, 간이 거의 베여 있지 않은 음식을 가리켜 ‘하얀 캔버스를 받은 기분’과 같은 표현 방식을 구사한다.


백종원 씨 역시 맛 표현의 고수다. 만약 블로거나 인플루언서로서 맛 표현을 배우고 싶다면 백선생 방식에 주목해 보자. 백 선생님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흔히 아는 맛과 비교해서 설명한다. 가장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이다. “시중에 파는 파인애플 통조림과 이 파인애플은 달라요.” 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맵다’가 아니라 ‘신라면 정도의 맵기’ 라고 표현한다. ‘쓰다’가 아니라 ‘사약을 마시는 것 같다’, 맵싸하다가 아니라 ‘치약 먹는 것 같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상대방은 기존에 있던 음식을 매치해 봄으로써 그 맛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밖에 음식과 관련된 추억이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맛에 빗대어 볼 수도 있다. 어릴 적 동네 통닭집에서 시켜먹던, 튀김가루를 얇게 입혀 바삭하게 구운 통닭맛, 할머니께서 툭툭 던져서 만들어주시던 투박한 수제비의 손맛.


한 번은 경상도 대구에 촬영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출연하신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자두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새그러운데 억쑤로 마싯다이가~ 방송국 양반들 한 번 잡숴보소,” 우리는 일동 서로를 쳐다보았다. ‘새그럽다가 뭐지?’ 나 역시 경상도 출신이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잘 안 쓰는 말이다. ‘새그럽다’는 ‘시다’는 의미인데 뭐랄까, 시지만 자꾸 당기는 그런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뜻을 알고 먹으니 ‘새그랍다’와 ‘시다’는 확실히 다르다. 그 자두는 할머니 말씀처럼 새그러운데 맛있었다.


맛 표현을 잘하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맛있다’, ‘맵다’, ‘짜다’, ‘달다’와 같은 미각을 버려야 한다. 미각에 의존하면 식상해진다. ‘오감’을 동원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어떤 음식은 후각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통밀로 구워서 구수한 빵 냄새, 과일향이 느껴지는 향긋한 커피 냄새 같은 것들이 예다. 백설기는 어떤가. 포근하고 쫀득한 질감 즉 촉각이 미각보다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혀있는 나는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참 쉽게 쓰는 방법이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물 혹은 현상을 맛에 빗대는 표현이다. 아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먹은 음식에 대한 맛 평가 숙제를 내줬더니 레모네이드의 맛을 ‘목에 벌들이 침을 쏘았다.’로 표현했다. 어떤 아이는 미역국에 대해 ‘혓바닥위에 부드러운 이불을 깐 느낌이다’고 했다. 너희야말로 맛평가의 천재들!


사실 출연진도 작가진도 이렇다 저렇다 맛 평가를 애써 하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신박함이 없다. 돌이켜보건데 촬영 때 음식이 정말 맛있으면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거의 말을 안 한다. 가끔 보면 씹기도 전에 ‘맛있다’가 먼저 튀어나오는 연예인이 있다. 협찬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최고의 맛평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이다. 영혼의 음식 앞에서는 말 할 시간조차 아까운 법이니까. 음식을 음미하느라. 음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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