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엄마의 두번째 명함> 제 책의 일부내용입니다.
희영 씨(44세)는 2021년 커리어 코칭으로 만난 분이다. 9살 딸을 둔 희영 씨는 5년 전 육아를 위해 그 당시 자동차부품회사 국내 및 해외 영업 관리직으로 12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육아를 위해 잠시 일 을 쉬고 선택한 퇴사였지만, 딸과 함께하는 즐거운 육아의 시간 속에서 도 직장 복귀로의 고민을 계속하게 된다.
영업관리의 직무적 특성상 업 무의 강도도 야근도 잦았던지라 이전 경력으로 다시 재취업할 엄두도 내 지 못했던 희영 씨는 그 당시 관심 있게 눈여겨보았던 ‘소잉 디자이너’ 자격 과정에 도전하게 된다. 학창 시절부터 소품 제작과 같은 창의적 표현 작품을 만들기를 좋아했던 희영 씨는 취미로 시작한 재봉틀과 자수로 만들어낸 작품으로 판매 시도도 해보면서 현재의 이 일이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감이 생긴 희영 씨는 몇 번의 작은 소규모 클래스 운영 의 경험을 쌓아보더니 몇 개월 후에는 자신만의 작은 ‘소잉 공방’을 창업하게 된다. 결혼 전 직장에 다니면서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공방 창업 이었으며 새로운 경력이었다. 희영 씨에게는 육아기가 자신의 새로운 커리어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린 인』의 저자 세릴 샌드버그는 “한 조직에 들어가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면 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래서 경력 또는 커리어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이제 사다리보다는 ‘정글짐’을 주로 쓰곤 한다.”라고 했다. ‘정글짐’에 올라가 보았는가?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 던 정글짐에서 아이들은 ‘누가 제일 먼저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나’ 경주 를 하기도 한다.
정글짐은 사다리와 달리 위로 올라가려면 때론 옆으로 빠지거나 돌아가야 하고 가끔은 막다른 길도 만나며 각자가 자기만의 경로를 탐색해야 목표에 이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단련하며 각자의 능력치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정글짐, 아니 경력의 한복판에서 만난 이 우연한 순간들이 일이 갖는 가치를 바꾸기도 하고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경로가 누군가에게는 훗날 도전해볼 만한 좋은 길이 되기도 한다. 바로 희영 씨의 사례와 같이 말이다.
경력을 사다리로 인식하던 시대에는 ‘일하는 여성 또는 엄마’가 선택 할 수 있는 옵션은 경력의 사다리를 더 올라가거나, 그만 내려오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옵션에서 ‘경력단절’이라는 불편한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정글짐에서는 옆으로 갔다가, 또 잠시 내려왔다가 다른 길 로 우회해서 올라가기도 하는 다양한 선택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엄마의 커리어는 전형적인 ‘정글짐’의 경력 모형을 하고 있다. 결혼과 육아로 인해 일을 잠시 쉰다는 것은 정글짐의 길목에서 다른 길로 우회 해서 올라가기 위해 잠시 다른 경로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력은 정글짐 안에서 무수히 많은 경로의 옵션을 만나고 선택을 하게 된 다. 이전에는 선택한 대학 전공과 관련된 분야로 취업하고 평생 일해야 만 하는 구조로 생각했기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커리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직장과 직무에서 ‘천직이야.’라고 생각하며 성실히 직장생활 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한 과연 정글짐의 다양한 경로의 옵션 안에 나를 두고 있기는 한걸까? 나는 내가 맞닥뜨리게 될 새로운 경로 선택이 두려워 애써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사다리를 올라가고만 있는 건 아닐까?
직장맘이든 전업맘이든 현재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 면 내가 현재 올라가고 있는 이 길에서의 확신이 없거나 또 다른 옵션 경 로 선택의 불안함이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이면으로 전환해보면 이 기간은 ‘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 가능한 시기이기도 하다. 예전 한참 학창 시절 진로를 고민했던 그 고민의 지점처럼 말이다.
퇴사 후 전력 질주의 육아기를 어느 정도 지나고 보니, 이렇게 치열하게 나에 대해서 탐색하고 또 다른 나의 재능을 찾아 경험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떨어지는 업무를 쳐내느라 바빠서, 혹은 매월 들어오는 고정급여의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그냥저냥 살 만하니까, 혹은 바쁘고 슬럼프라는 핑계로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다.
나 또한 두 살 터울의 아이 둘을 키우며 육아기의 힘겨운 시기가 있었 다. 하지만 자칫 흘려보낼 수 있는 엄마의 육아기에 나의 가능성들을 탐 색해보고 경험해보는 시간을 점차 가지게 되면서부터 이 시기가 너무나 도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기에 ‘경력단절여성’이라는 타이틀로 나를 가둬두고 있는 많은 엄마들이 현재 나는 정글짐의 한 길목에서 또다른 경력을 탐색하고 준비하 기 위한 ‘경력 전환기’ 혹은 육아기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서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힘들고 고된 육아기가 아니라 내 아이와 함께하 는 시간 속에서 ‘나의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커리어 전환기’라는 인식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