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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 수 Oct 29. 2021

아이에게 좀 더 친절할 것

나도 저런 때가 있었다

자양 전통시장에 내가 자주 가는 과일 가게가 있다. 자전거를 가게 입구에 세워두고 사과대추와 감을 사고 돌아서는 순간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되어 보이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다 나를 세게 쳤다. 빠른 속도로 강하게 들이받는 바람에 최대한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겨우 중심을 잡긴 했으나 하마터면 과일 가게 좌판에 나와 내 자전거가 함께 그대로 고꾸라져 과일을 다 엎을 뻔 한,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표정이 굳다 못해 미간이 오만상 찡그려졌고 말문이 막혀 입을 못 다문 채 아이를 쳐다봤다. 부딪히자마자 큰 소리로 나를 보며 ‘죄송합니다’ 외쳤지만 짜증이 팍 나서 그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무런 대답 없이 자전거를 끌고 넓은 쪽으로 나와 올라타려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그 아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를 했다. 어쩔 줄 모르는 눈빛과 표정으로. 내가 자신을 봐줄 때까지 기다렸던 걸까.


화가 잔뜩 난 모르는 어른의 얼굴이 무서웠을 것이다. 부딪히자마자 내뱉은 사과에 대답도 없이 가버리는 어른이 무서웠을 것이다. 문득 나도 저 만했을 때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아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 부딪힌 아저씨에게 최선을 다해 사과를 했지만 되려 육두문자 한가득인 욕을 하며 지나가버린 기억.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죄송한 마음보다 무서움이 훨씬 컸다. 상처였다.


나를 향해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는 아이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해주길 기다리는 듯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고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는 괜찮아, 괜찮아. 너는 괜찮아?” 하고 말했다. 그제야 아이는 안도의 미소를 띠며 90도로 허릴 숙여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부모님이 예의 바르게 잘 키우셨구나, 공손하게 잘 컸구나 하는 생각과, 순간의 짜증에 나는 딸 뻘이나 되는 어린아이에게 찡그린 얼굴을 하고선 다친 데는 없는지 묻지도 않은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가득 찼다.


어린 나에게 욕을 하며 사라졌던 그 아저씨를 그날 밤 일기에 쓰며 나는 그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던 이십여 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나 정도면 타인에게 배려와 친절이 몸에 밴 여유롭고 다정한 사람이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 꼬마보다 덜 자랐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따뜻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엔 아직 부족하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어디선가 읽은 말, 그런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많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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