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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 수 Aug 04. 2023

너무 짧은 이별

고작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

외할아버지의 스물다섯 살 때 사진을 엄마의 앨범에 수십 년, 그리고 최근 몇 년 간 내가 지갑에 넣고 다녔었다. 2015년 추석 연휴에 외가 식구들 모두 모여 점심을 먹고 나와 지갑 속 그 사진을 79세의 할아버지와 이모들에게 보여드렸다. 빼어난 외모의 할아버지의 젊었던 시절과 속절없이 지나간 세월에 대해 얘기했지만 다섯이나 되는 딸들은 각자 저들의 사는 얘기 하는 것에 더 바빠 긴 테이블 끝 벽 쪽에서 조용히 동동주 반주를 하고 계시는 자신들의 나이 든 아버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매년 모일 때마다 늘 그랬다. 사위와 딸들의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안 쓰러웠던 건 나를 포함한 손녀들 두세 명.


2015년, 식당 마당에서 별 뜻 없이 내가 수십 장 찍어둔 이 사진이 8년이 지난 2023년에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동네 산책을 하시다가 갑자기 숨이 막혔고 갑자기 구급차를 타서 응급실에 도착했다. 인턴, 레지던트쯤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한가득 거느리고 온 대학병원 의사는 ‘수술 중 돌아가시더라도’ 가슴을 열어봐야 한다며 87세 노인에게 가망이 없는 수술을 권했다. 가족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수술을 하면 할아버지는 절대 깨어나지 못할 거란 걸.


2015년 9월 추석 연휴. 자주 갔던 아구찜 식당 앞마당에서 사진을 쑥쓰러워 하시는 할아버지를 붙잡고 서른 장도 넘게 찍었다.
스물 다섯살의 어린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정신과 말투, 자세 등 모든 게 정정한 사람이었지만 이미 통증 한 번 없이 조용히 악화된 ‘특이 케이스‘라는 심장의 상태는 수술로 어찌 되지 않을 거란 걸 모두가 직감했다. 의사는 모두가 결과를 예측하는 수술을 고민 중인 딸들에게 돌아가시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보는 게 자식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가 아니겠냐는 말을 하며 응급수술을 독촉했다. 코로나로 출입이 너무 삼엄해 보호자는 지정된 단 한 명 엄마뿐이었고 이모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상황을 전달했다. 아무도 수술을 원치 않았고 할아버지의 눈과 귀와 정신이 온전할 때 남은 시간을 다 함께 정리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할아버지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술에 들어갔고 못 깨어나셨다.


2023년 8월 2일


이런 수술을 권하는 게 과연 의사의 사명인지, 늙은 환자의 가망 없는 가슴을 꼭 열어서 확인했어야 했는지, 수술대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인도적인 권유를 할 수는 없었는지 의사도 병원도 너무 원망스럽다. 덕분에 직계 가족인 엄마를 포함한 육 남매는 임종을 보지 못했다.


발인 하는 날 화장이 끝나길 기다리며. 99년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유골함을 옆에 뒀다.


이 모든 게 5일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다. 수술로 너무 부어 마치 다른 사람 같던, 정말 얼굴이 두 배로 부어 있던 할아버지의 입관 때 얼굴이 안 잊혀진다. 발인 날 화장터에 우리 말고도 끝도 없이 운구차가 드나드는 걸 보며 같은 날에 돌아가신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 많은 분들의 영정사진 중에 할아버지처럼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가족들이 입을 모아 장례식 내내 나를 칭찬했다. 무려 8년 전에 찍은 저 사진이 아니었다면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는 경직된 표정의 뿌연 증명사진을 확대해서 썼을 거라고. 나이가 들 수록 자신의 사진을 남길 일이 거의 없다. 웃는 노인의 독사진을 잔뜩 찍어 둔 것. 내가 최근 10년간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 1순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영면에 내가 새발의 피만큼이라도 역할을 한 느낌.


나의 외갓집. 나를 많이 예뻐하셨던 나의 외할아버지.


제대로 된 선물이나 용돈을 드린 적도 없고 초상화를 그려드리겠다는 약속도 못 지켰다.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일주일도 안 된 시간 동안 너무 큰일이 순식간에 지나가 며칠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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