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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Jan 23. 2018

아빠가 되어버렸다.

빨간색 2줄이 선명한 테스터기 사진을 받았다. 출근 직후 자리 정리하던 찰나였다. 아내는 아무래도 병원을 가봐야겠다며 운을 띄웠다. 아무래도 머쓱하고. 쑥스럽고. 했을게다. 확정되지 않은 이야길 싫어하는 아내 성격에 이 정도면 많은 용기를 냈을 테다. 물론, 나도 TV서 본건 있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진 익히 알았다. 


"오, 정말? 우와!!!"


'떨떠름한 표현일수록 여생도 떨떠름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신나서 이야기했는데, 듣는 이가 반응이 없다면 몹시 서운할 것이다. 그게, 배우자라면 말이다. 최대한 놀란 듯, 기뻐함을 아내에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임신이라는 놀라운 일이 아내만의 일이 아님을 표현해야 했다. 거짓과 과장이랄 수도 있다. 조금은 다르다. 그저, 내 진심이 우러나기엔 갑작스러울 뿐이다. 


좋은 소식은 널리 퍼뜨리랬다. 아내가 병원에서 찍어온 아기집 사진을 전국 각지로 배달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직장동료들에게. 얘가 왠일로 연락하나 싶어 스마트폰을 열어본 친지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놀랬을 것이다. 휴대폰은 쉼 없이 울렸다. 외쳐대는 '카톡'소리에 혼도 쏙 빠졌다. 날려드는 축하 소식을 채읽기도 전에 감사하다는 답장부터 작성했다. 


"축하해, 아빠 됐네. 어깨가 무겁다." "인생 승진했네"


오가는 덕담에 나도 모르게 허리가 굽혀졌다. 아빠가 됬다고? 나에게 아빠는 거대한 성벽과도 같은 분인데.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정신이 번쩍든건 눌리는 기분에서다. 어깨와 뒷목이 뻐근하다. 내가 두려운건 아닐까. 


현실과 꿈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멍하기까지 하다. 이게 꿈은 아닐까. 그럴때가 있지 않은가. 꿈 속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나를 보거나, 뭔가에 쫓기는 나를 보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내 모습을 볼 때 말이다. 3인칭 시점으로 내가 나를 보는 느낌. 


그럴대면 깨고 나서도 헷갈린다. 내가 꿈을 꾼 건지, 저번에 있었던 일인 건지. 오늘이 그렇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정신이 아니다. 맞다면 보다 총명하게 글을 썼겠지.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직도 긴가민가 하다. 눈에 보이는건 없는데, 남들이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한다. 내 삶은 아직 아무 변화도 없는데 말이다.


'축하받을 일이 맞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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