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에도 지키고자 한 일을 잘 지켰을까.
퇴사 전, ‘퇴사 후에도 지키자’라는 제목으로 메모를 남겼다. 스마트폰 메모 어플에 남긴 걸로 보아 출근 중이었거나 퇴근 중이었으리라. 내용이 많은 것도 아니다. 총 5가지다. 다음에 이어 적어야지 해놓고 추가하지 않은 것도 같다.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가물가물한지...
1. 주중에 늦잠 자지 않는다.
2. 하루에 1권 책을 읽는다.
3. 그날 읽은 책은 꼭 그날 포스팅한다.
4. 매일 글 쓴다.
5. 매일 감사일기를 쓴다.
부끄럽게도 1번부터 실패다. 처음 며칠 정도는 저절로 눈이 떠졌다. 5시 반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서 출근한 지 4년 가까이니, 그 무렵 저절로 귀가 트이고 눈이 떠졌다. 그 시간 즈음, 거실에서 복작복작 식구들 소리가 들려서 그랬던 것도 있다. 하지만 월(月)이 바뀌고 바로 실패했다.
핑계를 대자면, 커피 탓이다. 카페인에 예민한 편인 나는 커피를 많이 마시면 잠을 못 잔다. 회사에 다닐 때는, 너무 일찍 일어나 출근하니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혼이 반쯤 나갔고 그걸 버티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게 된 건 두 번째 직장 때부터였다. 아메리카노를 그때부터 마셨다. 그 전에는 라떼나 겨우 마셨다.
이것도 몇 년을 마셨더니 습관이 되었는지, 안 마시면 허전해서 퇴사 후에도 계속 마셨다. 오히려 시간 개념 없이 마시게 됐다. 늦은 오후에는 일부러 카페인을 피했는데, 퇴사 후에는 늦게 자도 되니까 그냥 마셨다. 문제는 한 번 어긋난 수면 패턴은 제자리로 돌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덕분에 1번 주중에 늦잠 자지 않는다는 처절히, 무참히 실패했다.
2번과 3번은 묶어서 실패했다. 아니, 2번 실패하니 3번도 당연히 실패인데 왜 저렇게 목표를 잡았지? 물론,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성실한 줄 알았다. 최인철 교수님의 『프레임』(21세기북스, 2011)을 보면, “이 모든 상황은 의지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애초부터 미래에 대한 우리의 계획이 현재의 의지에 의해 지나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나온다. 내가 그랬다.
1일 1권은 읽지 못했지만 매일 책 읽고 필사하기는 성공했다. 퇴사 전 한 달에 15권 정도를 읽었는데 퇴사 후 한 달간 12권을 읽었다. 이상하다. 분명 시간은 더 많은데... 책 읽으려고 다시 지하철이라도 타야 하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게으름 탓이거늘.)
4번은 반만 성공했다. 메모에 적은 내용은 브런치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9월 초부터 매일 글쓰기를 잠시 쉬었다. 처음에는 3일만 쉬어야지 했는데, 일주일만 쉬어야지가 되었고, 추석까지만 쉬어야지, 20일 쉴까? 결국 거의 한 달을 쉰 꼴이 되었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비즈니스북스, 2019)을 보면, ‘습관은 두 번째 실수에서 무너진다’고 했다. “한 번 거르는 것은 사고다. 두 번 거르는 것은 새로운 습관의 시작이다.”라고. 브런치 연재를 쉬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었고, 매일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기가 참 힘들었다. 매일 글쓰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버린 뒤라 그런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반은 성공했다고 하는 건, 다른 공간에서는 매일 글을 썼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행시 수준이었지만 매일 글을 쓰긴 썼다. 휴, 그나마 다행이다.
5번은 8월부터 도전한 일이라서 그런지 아직 열심히 하는 중이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가지게 되었다고 과거형으로 쓰고 싶지만 아직 변화가 크질 않다. 여전히 인상 찌푸리는 때가 많고, 짜증 낼 때가 많다.
퇴사 후에도 지키겠다고 한 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감사일기 포함 30%는 지켰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양심이 찔린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다시 나와 약속해야겠다. 다시 브런치에도 매일 글을 써야겠다. 또 열심히 달려보고, 힘들면 또 잠시 쉬지 뭐.
*참고 도서
- 최인철, 『프레임』, 21세기북스, 2011
- 제임스 클리어,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비즈니스북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