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조금 느긋해졌지마는
한때 지각대장이던 나는 개과천선하여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입사 후 퇴사할 때까지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대기록을 이뤘다. 출근에 1시간 반이나 걸리는 장거리 출퇴근이었음에도 말이다. 직장인에게 기본 중 기본은 지각하지 않는 것인데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지각하지 않는 방법은 참 쉽다. 일찍 나오면 된다. 내가 주로 활용하는 방법은, 최단시간을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시간이 몇 분인지 모른다. 보통 걸음으로 몇 분, 빠른 걸음으로 몇 분, 뛰어가면 몇 분. 그런 시간 계산이 내 머릿속에 없다.
회사 다닐 때도 그랬다. 지각하지 않는 마지막 차 시간이 내 머릿속에 없었다. 6시 50분이면 마을버스를 타고, 7시 10분이면 지하철을 탔다. 회사 근처에 도착하면 8시 10분, 아무리 늦어도 8시 20분이었다. 다음 차를 타도 충분하겠지만 늘 같은 시간에 차를 탔다. 언제 무슨 일이 갑자기 생길지 모르니까. 차라리 빨리 가 있는 편이 낫다.
한 번은 출근길에 이런 일도 있었다. 당산역에서 갑자기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다. 한강 건너 합정역에서 원인 모를 연기가 나서 화재 확인 중이라는 이유였다. 운행 중단 안내가 나왔을 때는 이미 당산역에서 한참을 정차한 뒤였다. 운행 중단할 거면 미리라도 알려주지. 급하게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회사로 가는 버스를 찾아 겨우 환승했다. 그날 2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직원들 대부분 30분 이상 지각했다. 나? 나는 8시 58분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평소에 워낙 일찍 다닌 탓에 30분 지연이어도 9시 전에 도착한 것이었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건 아빠를 닮았다. 성격 같은 두 사람(아빠와 나)이 움직이니 약속 장소에 1시간 먼저 도착해버린 일도 있었다. 다른 시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 일찍 터미널로 가야 해서 아빠한테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나는 나대로 30분 먼저 도착하도록 시간을 말씀드린 것이었는데, 아빠는 아빠대로 30분 먼저 도착하게 출발하셨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시간을 보고 ‘아빠랑 나랑 이렇게나 똑같구나’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요즘에는 조금 달라졌다. 출근 시간처럼 꼭 지켜야 할 시간이 사라져서 그렇다. 친구와 약속한 날에도, 출발할 때 미리 내 도착 시간을 말해준다. 나 조금 늦게 나와 늦을 거 같으니 너도 늦게 나와. 내가 더 멀리 살아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전처럼 시간 맞춰 칼 같이 준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크다. 게을러졌다. 맞다. 맞는 말이지만 느긋해졌다고 하련다.
사족_ 이러다 다시 지각대장 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