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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Oct 18. 2019

다음에 또 가지 뭐

그렇게 생각하니 아쉬움도 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제주 여행은 번번이 엎어졌다. 남들은 수학여행에서 제주도만 갔다고 하는데 나는 강원도만 줄기차게 갔다. 초등학교 때, 내 생애 첫 수학여행 예정지는 제주도였다. 하지만 외환 위기로 수학여행 자체가 없어질 뻔했다. 대신 강원도로 잠시 다녀왔다. 학생회를 주축으로 교장실에 가서 떼를 쓴 덕이라고 전해 들었다. 중학교 때도 제주도로 수학여행이 잡혔다. 무슨 사유인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갑자기 강원도로 변경되었다. 고등학교 때마저 제주도로 예정되었던 수학여행이 강원도로 변경되었다. 애초에 강원도로 잡혀 있던 것이면 모를까. 세 번 다 제주도였다가 취소되었다.


처음 제주 땅을 밟은 건 첫 회사에서 떠난 산행 때문이었다. 그때 사장님께서 갑자기 등산을 다니셨다. 직원들을 모둠을 짜서 이번 주에는 이 모둠, 다음 주에는 저 모둠이 사장님과 등산을 갔다. 계속 등산에 불참했던, 소위 블랙리스트 직원을 모아 한라산 원정대(?)를 꾸리셨다. 나는 거기에 속하진 않았는데 친한 언니가 속해 있어서 겸사겸사 자원해서 떠났다. 이렇게 단체로 가는 때가 아니면 언제 한라산을 갈까 싶어서였다. 산행이 목표였던 터라 정말 제주에 내려 한라산만 오르내리고 왔다. 


퇴사하면서 제주 한 달 살기를 떠나겠다고 했다.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위에서 퇴사 후에 뭐할 거냐고 물어봐서 계획한 게 없다고 하니, 제주 한 달 살기를 추천해 주더라. 본인들의 로망을 말해주는 것이었겠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나 싶어 찾아봤다.


비행기 표에, 숙소에 이것저것 다 찾아보고 날씨를 보는데, 태풍이 온다고? 그럼 잠시 보류. 이렇게 벌써 세 번이나 검색만 열심히 하고 예약은 안 하고 있었다. ‘너 그렇게 찾아만 보다가는 못 가. 일단 그냥 예매부터 해.’ 귀 얇은 나는 이번엔 정말 훌쩍 가버려야겠다 마음먹었다.


혼자 갈 여행으로 잡은 것이었는데, 가족들이 끼긴 했지만... 정말 훌쩍 가버려야겠다고 마음먹으니 가게 되었다. 신기하지 참. 생각만 할 때는 죽어라 안 맞더니 일단 지르니 떠나게 되었다. 여행 가는 당일 아침까지도 내가 제주에서 어디를 보게 될지 찾아보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욕심 내지 않고 볼 수 있는 만큼만 보고 할 수 있는 것들만 했다. 


한 번 갈 때 뽕을 빼고(?)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평소의 나인데. ‘다음에 또 가지 뭐.’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쉬움도 크지 않았다. 정말로, 또 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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