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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철학자 Sep 29. 2022

진리의 탄생 1.

간단하게 알아보는 철학사

 기원전 479년 그리스 연합군이 10년 넘게 지속된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후 아테네의 전함은 상선으로 바뀌었고 점차 무역으로 큰돈을 번 상인들이 생겨나면서 소수 귀족들의 권력은 축소되어 갔다. 이에 따라 권력이 다수에게 분산되면서 민주주의가 움트기 시작했다. 이에 '민중 의회'가 탄생했고, 사법제도는 수백 명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민중 재판'의 형태로 변화했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재판에는 무려 500명의 배심원이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풍토 때문에 아테네인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의사를 표현해야 했고 여기서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과 논증의 참, 거짓을 판별하는 '논리학'이 탄생했다. 즉 진리의 수요가 발생한 것이다. 


 기원전 469년 아테네의 중산층 가정에서 소크라테스가 탄생한다. 그는 무지의 지를 강조하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대답 속에서 모순점을 찾아 재 질문하는 과정에서 진리와의 격차를 좁혀가는 '산파법'*이라는 대화법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렸다. 그런 뒤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필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크라테스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선동하여 그릇된 가르침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독배를 들게 되었다. 



 *산파법 : 산파가 산모로부터 출산을 유도하듯 적합한 질문을 던져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진리를 낳게 한다는 뜻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젊건 늙었건 여러분을 만나 설득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마음이 선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육체나 재화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의 능력이란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를 사형에 처하고 나면 여러분은 나를 대체할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농담으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마치 크고 빼어난 말의 등에 앉은 쇠파리처럼 이 도시에 덧붙어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커서 약간은 둔해 보이는 준마는 등에 붙은 쇠파리의 자극이 필요합니다. 나는 신이 이 도시에 보낸 한 마리의 쇠파리입니다." _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의 삶이 주는 시사점은 첫째는 그가 자신의 철학과 삶을 일치시키는 자세를 보여줬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가 진리의 절대주의를 주장했다는 점이다. 즉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비판하고 근본적인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철학에 있어 진리에 대한 태도는 크게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회의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절대주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단일 진리를 상정하는 태도이고 상대주의는 변화하고 운동하는 세계의 다양한 진리를 고려하는 태도이다. 회의주의는 보편적 진리나 그에 도달하는 방법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 세 가지 태도 가운데 소크라테스는 절대주의의 포문을 연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이를 받들어 진리의 절대성을 토대로 한 이데아론을 펼치게 된다. 


 영국 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2000년의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고 숨이 끊어졌을 때 플라톤의 나이는 고작 스물여덟이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 어리석은 민중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보고 민주제를 불신했고 소수의 엘리트에게 지배받는 철인 정치를 꿈꿨다. 또 이성적 판단과 진리 추구를 견지하는 스승의 태도를 따라 절대적 이성을 추구하는 이성 중심주의를 꿈꿨다. 그는 불만족스러운 현실과 이상은 별개의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고 이를 토대로 현실과 이상을 분리하는 이데아론을 펼쳤다. 이 이분법은 훗날 서양 근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불완전한 현실 너머에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의 세계가 존재한다. 오감으로 경험되는 현실의 세계와 불변하고 완벽하며 정신적 활동을 통해서만 도달 가능한 이데아 세계 이렇게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이천 년간 서양인들의 사유 체계로 작동했다. 세계와 자아, 신과 인간,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성, 정의와 부정의 등의 단어를 음미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내어 세상의 주인으로 물질적 자연을 분석하는 태도로 이어져 과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더 나아가 동양을 계몽의 대상으로 서양을 계몽의 주체로 분절시켜 제국주의를 합리화시키는 사상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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