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코로나 바이러스
시작은 박쥐를 먹는 사람들이었다. 박쥐를 먹는 사람들, 박쥐를 먹을 사람들. 박쥐는 양 날개를 쫙 펼친 채 가판 위에 올려져 팔렸다. 온몸의 피를 뽑아낸 잿빛의 몸은 그 속의 골격을 그대로 드러내며 말라 있었다. 좀처럼 잊기 힘든 흉측한 얼굴은 생기도 없이 덤덤한 무표정 만을 지어 보였다. 박쥐를 먹을 사람들은 죽은 박쥐를 들어 올려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다문 입술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자 크림 색의 송곳니가 드러났다. 동물의 피를 빨 때도 없진 않았지만 대부분 열매를 따먹느라 쓴 이빨이었다. 쓸데없이 날카롭게 자란 송곳니는 오히려 식사를 하는데 방해였을 것이다. 박쥐를 먹을 사람은 이 송곳니가 소의 둔부에 깊게 박힌 모습을 상상했다. 빨아낸 더운 피를 몸 구석구석으로 활기차게 보내었기를 기대했다. 그 섬뜩한 '식이'가 비루한 몸에 도움이 되기를. 박쥐를 먹을 사람은 이윽고 돈을 치르고 박쥐를 샀다. 상인이 거스름돈을 세는 동안 박쥐를 보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는 집으로 가 곧장 박쥐를 먹었다. 부위 부위 토막을 내어 삶아서 먹고 구워서 먹었다. 남은 조각은 그러모아 튀겨도 먹었다. 그는 좋은 기운이 온몸에 고루 돌길 기대하며 꼭꼭 씹어서 삼켰다. 박쥐를 받아들인 그의 몸은 이 땅에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물질을 생성했다. 사흘 뒤, 전염병이 창궐했다.
최초의 숙주가 대륙에 바이러스를 풀어놓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바이러스는 기어이 서울에 상륙했다. 1차 확진자는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공항에서 잡혀 격리된 후 검사를 받았고 결국 확진자로 판명됐다. 온 나라가 일제히 끓어올랐다. 춘절 연휴 동안 우리나라로 밀려 내려오는 중국인에 대한 우려가 폭발했다. 정부에 의해 몇 가지 대책과 몇 개의 대응이 급하게 시행되었지만 확진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한국인 확진자도 나왔다. 우한을 다녀온 그는 확진자로 판명되기 전까지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가 서울 여기저기를 다니는 동안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떤 대응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바이러스는 몸 안에 잠복했고 눈에 보이지 않았다. 길 위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마스크 가격이 폭등했다. 미세먼지까지 날아들었다. 역시 대륙에서부터였다.
나는 바이러스의 실체를 신문과 뉴스로만 보고 실제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가 그녀와 들린 안국역, 삼청동 일대에서 보게 되었다. 발 디딜 틈 없던 삼청동 길이 황량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삼청동 카페 거리로 이어지는 길까지 인적이 드물어 고향으로 몰려 내려간 설 연휴가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빠지고 사라진 거리가 내가 확인한 전염병의 실체였다. 바이러스의 그림자가 밤처럼 길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길 위에 남은 이들은 하얀 마스크를 코 위까지 덮어썼다. 인적이 뜸한 길을 홀가분해하면서도 어딘가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우리도 덩달아 조심조심 걸으며 안국역과 삼청동 사이를 넘어갔다.
언론은 새로운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마치 기록을 경신한 스포츠 경기라도 되듯 중계했다. 계속해서 뒤처지는 정부의 대처가 언론에 불을 지폈다. 뉴스 기사 댓글마다 여론이 생겨났다. 좌와 우로 나뉘어 누구의 탓이 큰지 (그렇다고 탓이 없는 사람은 없었고) 따져 묻는 사이에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실체 없는 말이 전염병처럼 창궐했다. 기술과 미디어의 발전은 유언비어에 세련미를 더해주었는데 그중엔 공중파 뉴스 기사를 흉내 낸 것도 있었다. 뉴스를 만든 이는 고등학생이었다. 개학과 휴교의 기로에서 짜낸 자구책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꼼짝없이 처벌받게 될지 모른다.
카톡마다 유언비어들이 퍼졌다. 확진자들이 가는 걸음걸음마다 까똑까똑 울려댔다. 강남의 대형 성형외과 이름이 카톡으로 날아들었다. 확진자 하나가 그곳을 지인과 들렀다는데 나는 그때 바로 옆 빌딩에서 볼 일을 보고 있었다. '도망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로 가겠는가? 유언비어는 발도 손도 없이 5G 통신망으로 전염병을 날랐다. 언론도 가세했다. 정부는 정보를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보가 무너지듯 추측과 확신이 물밀듯이 밀려 나왔다. 그 사이 확진자들은 영화관을 가고 대중목욕탕도 가고 면세점에서 쇼핑도 하며 부지런히 바이러스를 날랐다. 부인을 감염시킨 확진자 12번은 그 사이 강릉도 다녀왔다. 그러니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감염자 유형에 대한 정부 발표가 바뀌었다. 바이러스는 이제 증상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퍼져나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침 한번, 콧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이도 바이러스를 몸에 담을 수 있고, 옮겨 나를 수 있도 있게 되었다. 누군가 기침 소리를 내면 상어를 만난 물고기 떼처럼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던 사람들은 이제는 오히려 옴짝달싹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무증상 감염자의 등장에 만사가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터지는 포연에 참호 안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병사처럼 시민들은 돌처럼 움츠러들었다.
이 와중에 마스크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셈이 빠른 사람들은 매점매석을 통해 마스크를 사들였다. 몇 천 원 하던 마스크는 이제 그 열 배의 값을 치러도 사기 힘들게 되었다. 이미 값을 치른 주문이 취소되는 일도 생겼다. 전염병의 창궐로 활짝 열린 가치 창출의 기회에 장사꾼들은 눈이 벌게져 침을 질질 흘렸다. 약국과 편의점, 마트 등지에서 모습을 감춘 마스크는 언제든 가격을 바꿔달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에 올라왔다. 주식 마냥 가격이 널을 뛰었다.
이것이 시장 경제가 아니고 무엇이냐? 이럴 때 벌지 또 언제 벌겠느냐? 기회를 콱 문 송곳니 틈으로 장사꾼들이 웅얼거리며 대꾸했다. 정부는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를 엄격하게 단속하겠다고 했다. 장사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보따리장수들이 푸드덕 날았다. 국경을 넘어 대륙으로 넘어갔다. 그 모습이 꼭 박쥐와 같았다. 전염병을 퍼트렸던 날갯짓이었다.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말거나 출근을 해야 한다. 유치원과 일부 초등학교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휴교를 결정했다. 그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어른들은 꼼짝없이 출근을 했다. 이미 사람들의 얼굴에선 마스크가 많이 사라졌다. 구할 수도 어렵거니와 무증상 감염자가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는 마당에 도리가 없었다. 사방에서 총탄이 날아들면 차라리 체념하는 편이 쉬운 것이다. 사람들은 천천히, 아무런 대책 없이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정부는 느지막이 중국 후안 성과 일부 성에 대해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몰려오는 6만여 명의 중국인 유학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마스크 가격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 주의) 바이러스의 시작에 대한 내용은 창작에 의한 것이다. 바이러스의 시작이 박쥐라는 것은 기원의 주요 가설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