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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Sep 08. 2020

네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천일 연애

  코로나가 끝이 없다. 나는 코로나라는 이름의 맥주를 가장 좋아하였는데 이제는 코로나 이름만 꺼내도 주위 사람들이 도끼 눈을 뜬다. 그 맥주는 이제 마트의 냉장칸 구석으로 밀려나 서러운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라고 알았겠나, 21세기에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쓸 줄을. 2020년을 '코로나', 세 단어로 요약하는 것은 불행이다. 나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해'라고 정의했던 참인데.

    



  2017년에 나는 가녀린 몸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 인스타에는 나날이 줄어드는 몸무게를 마치 올림픽 중계하듯 보도했다. 몸이 고생했던 것도 아니고 마음이 고생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다이어트의 관성이 무시무시했을 뿐이다. 브레이크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몸무게의 마지노선은 매일 같이 뒤로 밀렸다. 나는 2차 성징 이후 최소 몸무게라고 뻐기듯 써 놓았던 나의 태그를 기억한다. 지금은 그녀가 내 뱃살을 붙잡고 위안을 삼는다.

  

  2018년에 나는 처음으로 제주 섬에 가보았다. 새파란 하늘과 시퍼런 바다 사이를 저비용 항공사 비행기로 가르면서 나는 한없이 들떴다. 창문 밖에 흐르는 구름을 찍느라 바빴다. 애처럼 설렜던 나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었던 것은 그녀였다. 도쿄부터 체코까지 기내식 좀 먹어본 그녀가 연륜이 넘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녀와 함께 달리는 제주의 길이 너무 좋아서 나는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차를 샀다. 이제 2년 차가 된 드라이버는 보복 운전도 제법 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의 첫날과 마지막 날을 우리는 똑같은 장소에서 함께 했다. 공동 목욕탕이 달린 호텔에서 우리는 2019년이 밝는 것을 보았고 2020년이 밝는 것도 보았다. 그녀는 머리숱이 풍성하고 피부는 유리 같아서 나보다 씻어야 할 것이 한참은 많다. 먼저 방으로 돌아와 그녀를 기다리는 나는 엄마를 기다리던 재돌이와 같았다. 마침내 그녀가 왔을 때 경쾌하고 청아하게 울리던 객실키의 전자음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곳은 코로나에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우리는 아무래도 불안해서 가지를 못한다.

  



  오늘은 2020년 9월 8일 화요일. 비가 온다던 아침, 하늘이 그녀의 이마처럼 환하게 걷혔다. 이토록 맑을 날씨를 모르고 비가 죽죽 내릴 거라 모함했던 기상청은 반성하라. 외근을 나온 나는 일을 하면서도 몸이 달아 속수무책이다. 볼이 핼쑥한 가녀린 몸을 했을 때나 둔중한 몸에 운전을 할 때면 바지 단추를 풀어야 하는 지금도 그녀를 보러 가는 날이면 몸이 달아 견딜 수가 없다. 어쩌면 기상청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우리의 1,000일. 그러니 오려던 비도 눈치가 있다면 그쳤어야지.

  


  너는 나를 살찌게 한다. 말간 네 볼을 보고 있자면 식욕이 돌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너는 내가 차를 산 유일한 이유다. 세상엔 너와 함께 다니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으니.

  

  나는 새해의 첫날과 마지막 날에 집을 떠나 너에게 간다. 내 삶의 끝은 결국 너와 함께 일 테니. 

  


  2020년 9월 8일 화요일, 우리의 1,000일.

  나는 네가 좋아서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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