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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Dec 14. 2020

역병과 우리의 사랑에 대하여

3주년

  2020년은 나에게 몹시 특별한 해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떻게 특별한지는 지금 당장 이야기 할수는 없어도) 그 'C로 시작하는 역병'으로 2020년을 정의 지어 버리면 나로서는 몹시 곤란하다. 2020년에는 그녀와 내가 마침내 1,000일의 시간을 쌓은 순간을 비롯해 역병 따위에 굴하지 않았던 우리의 시간들이 산재해 있는데, 다짜고짜 역병으로 2020년을 퉁쳐버리면 나는 좀 많이 슬프고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3주년이 오늘이다.

  

  1,000일에도 역병은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를 두둥실 떠다녔다. 우리는 차에서 데이트를 하고 사람이 별로 없는 식당을 찾아가 조촐하게 우리의 천일을 자축했다. 어차피 우리는 앞으로 1,000일보다 2배는 행복할 2,000일을 함께 할 거라서 별로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천일 다음에는 3배로 행복할 3,000일도 기다리고 있고, 어차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테니까. 화가 나는 건 어느 'C로 시작하는 나라'에서 시작한 역병이 우리의 천일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의미 부여가 어떻든.

  

  그리고 3주년을 하루 앞둔 날에 전국 확진자 수는 기어이 1,000명을 넘었다.

  

  우리는 요즘 차에서 데이트를 한다. 영화에서 보면 좀비가 창궐하는 도시를 차를 타고 탈출하는 커플들이 나오곤 하는데 우리도 사실 그런 기분이었다. 창궐하는 것은 역병이고 우리는 밥벌이에 얽매여서 도시를 탈출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차 안에서 우리는 몹시 안전한 기분이었다.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를 처음 경험했다. 사람이 한적한 공원 주차장을 찾아가 따뜻하게 히터를 틀어놓은 차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함께 마셨다. 그곳엔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차들이 털털거리며 뿌연 김을 피우고 있었다. 더블 치즈 버거와 스낵랩을 먹고 캐롤을 들었다. 속이 깊게 팬 일회용 접시는 차에서 음식을 먹을 때 몹시 편리하다. 앞자리 시트를 뒤로 쭉 빼고 기대어 누워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를 위해 쓴 글을 보여 주었다. 다행히 그녀가 즐거워해서 나는 행복했다.

  

  나는 복받았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도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그녀가 있으니.

  

  2020년은 나에게 몹시 특별한 해였다. 2021년은 훨씬 더 행복한 해가 될 것이다. C로 시작하는 역병은 그때도 아직 우리의 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의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포근히 사랑을 나눌 것이다. 그때는 꼭 맥도날드가 아니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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