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세먼지와 농구 소년
한강 고수부지, 아니 한강 공원을 걷는 이야기를 이어서.
요즘은 날씨만 좋으면 웬만하면 나가서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역병의 시대, 마스크는 어차피 필수라서 미세먼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초미세먼지가 높음이면 이건 또 얘기가 달라진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유독 물질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고 하면 햇빛이 아무리 쨍쨍 내리쬐더라도 현관을 나서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초미세먼지라는 단어는 이름부터가 아주 무섭다. 나라에서 뭔가의 지수를 이야기할 때 '초(超)'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경우가 있던가 싶어 생각해 봤는데 내 생각엔 없는 것 같다. 더위도 아주 더우면 무더위라고 하지, 초더위라고는 안 하지 않나요?
추위의 경우에도 초추위라고는 안 한다. 이쪽은 아예 한파(寒波)라고 더 무서운 말을 쓰는 것 같지만.
오늘은 미세먼지도 초미세먼지도 없어서 한강으로 나갔다. 맑디 맑은 공기 속에 시야가 멀리까지 탁 트이고 햇빛도 기분 좋게 내리쬐는 그런 겨울날이었다. 그래도 기운은 영하권이라 발목까지 오는 양말에 롱 패딩을 입고 출발. 그리고 10여 분 뒤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농구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대여섯 명이었다.)
어찌나 신기한지 걷는 것도 잊고 잠시 서서 아이들의 모습을 구경하였다. 실력은 둘째치고 목청은 또 얼마나 좋은지, 주변을 걷는 사람들도 한 번씩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질 사나운 치와와랑 말티즈는 그쪽을 향해 왕왕 짖기도 하고.
10여 분을 구경했을까. 겨우 그 정도 잠깐 서 있었다고 손가락이 추워서 주먹을 오므렸다 폈다가 해야 했다. 장갑까지 끼고도 말이지.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입김을 소처럼 뿜어대며 공을 이리저리 던져대고.
나도 한때는 저랬을 것이다. 반바지에 반팔은 무리더라도 추위에 손이 곱는 것도 아랑곳 않고 친구들과 모여 놀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미세먼지 앞에 초(超)가 붙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마스크 안으로 송골송골 맺히는 서리에 몸서리가 쳐지는 나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