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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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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Mar 01. 2021

보이지 않는 장면

 어느날의 , 묵직한 카메라와  묵직한 렌즈가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던 . 기대와는 다르게 날씨는 우중충했다. 빈틈하나 보이지 않는 먹구름 속에서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 우산을 쓰고서 다른  손으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쫓기듯 찍기 시작했다. 장대비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겨울 끝에 미처 떨어지지 못한 낙엽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동시에 홍매화 꽃잎이 빗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굵은 빗줄기 소리가  귀를 막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짧은 시간 때문인지 마음만 조급했다. 나름 카메라를 보호한다고 애를 써보지만, 지금  상황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사진찍는 행위를 애정하지만, 카메라를 딱히 소중하게 여기진 않았다. 욕구와 귀차니즘이 혼재된 매우 불친절한 주인이다. 수년간 써온 렌즈도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닦았고, 카메라를 쳐다보는  출사 전날 배터리를 체크할  뿐이었다. 카메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사진의 퀄리티는 비례하는 걸까. 사진 속에 나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도 없다.  사진 속에선  자신을 찾을  없다. 영혼없이 누른 셔터  이후엔 책임질  없는 무의미한 장면들로 가득했다. 집에 돌아와 내가 찍은 사진들을  때면, 그렇게 공허할 수가 없다. 채우고 싶은 무언가를 아무  없는 카메라를 향해 원망하듯 퍼부었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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